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대왕의 꿈'

남해 차차웅(南解 次次雄, 기원전 50년 ~ 24년, 재위 4년 ~ 24년), 신라 2대왕으로 박혁거세 거서간과 알영부인의 적자이다. 이름은 남해(南解), 다른 이름은 민해(愍海)라고 한다.

 

남해 차차웅은 몸집이 장대하고, 성품이 침착했으며 지략이 많았다고 알려진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남해 거서간(南解 居西干) 이라고도 하고, 차차웅(次次雄)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존장(尊長)의 칭호로 오직 이 왕만을 이렇게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다.

 

*거서간(居西干) - 신라 초기의 왕호(王號)

 

 

그렇다면 '차차웅'은 뭘까? '차차웅'은 왕호라고 한다.

 

<삼국사(三國史)>에는 "신라 왕을 거서간(居西干)이라 불렀는데, 이것은 진한(辰韓)의 말로 왕이라는 뜻이다. 또한 '귀인을 부르는 칭호'라고도 한다. 차차웅이라고도 하고, 자충이라고도 한다.

 

반면 신라의 김대문은 "차차웅 혹은 자충(慈充)은 무당을 이른다. 세상 사람들이 무당이 귀신을 섬기고 제사를 숭상하기 때문에 그를 두려워하고 공격하게 되어 마침내 존귀한 존장(尊長)을 일컫어 '자충'이라고 하였다", 혹은 이사금(尼師今)은 지금의 잇금(齒理)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김대문(金大問) -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문장가이며 관료이자 학자이기도 하다. <화랑세기>의 저자이며, 본관은 경주이고, 금성 출신이라 한다.

 

 

이태진 교수에 의하면 "차차웅"은 가가웅으로도 읽을 수 있으며, 또한 "거서간"에서 이어지는 호칭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대부터 'ㅊ, ㅉ' 발음은 'ㅋ, ㄱ' 발음과 혼용되어 왔다. 고대 로마에서 '카간'을 '각찬'이라고도 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차차웅이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호칭이 아닌 거서간에 연속성이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신라 2대왕 남해 차차웅, '차차웅' 의미는 무당이다??

남해 차차웅 6년(즉위 3년) 음력 1월에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묘(廟)를 세웠고, 8년(즉위 5년)에 '석탈해'를 맏사위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10년(즉위 7년)에는 석탈해를 대보(大輔)로 삼아 군사와 국정에 대한 일을 맡겼다고 한다.

 

남해 차차웅이 신라의 거서간으로 있을 때, 외부의 침입이 잦았다고 한다.

 

남해 차차웅은 좌우 신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성인이 나라를 버리시고 내가 나라 사람들의 추대로 그릇되어 왕위에 있어, 두려움이 마치 냇물을 건너는 것과 같다. 지금 이웃 나라가 와서 침범하니, 이는 내가 덕이 없는 까닭이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좌우의 신하들은 "적(賊)이 우리가 국상(國喪)을 당하였음을 다행으로 여겨서 망령되게 군사를 이끌고 왔으니 하늘이 반드시 그들을 도와주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참으로 신기하게도 적이 잠시 후에 물러갔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선덕여왕'

남해 차차웅 14년(즉위 11년)에 왜(일본)가 민가를 노략질하여 6부의 병사들을 내보내 격퇴하였다.

 

남해 차차웅 18년(즉위 15년), 경주에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음력 7월 메뚜기떼의 재해가 있어 백성들은 굶주렸고, 이에 창고의 곡식을 풀어 백성들을 도왔다. (? 년 미상) 고구려에 복종하는 일곱 나라가 와서 투항했다.

 

남해 차차웅 19년(즉위 16년)에 북명(北溟)에서 '예(濊, 穢, 薉)'왕의 인장(예왕지인, 濊王之印)을 발견했고, 차차웅에게 바쳤다고 한다.

 

<삼국지>, <오환선비동이전>에 의하면 부여조(條)에 "그 나라 인장에는 '예왕지인'이라 한 글귀가 있다"라고 했는데, 이것은 신라에서 예(濊, 穢, 薉)나 부여(扶餘)가 그리 멀지 않고, 가까운 이름이었음을 나타낸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그 당시 신라 세력에 비추어 황당하다는 주장도 한다.

 

남해 차차웅 24년(즉위 21년)에 죽어, 경주 사릉원(蛇陵園) 안에서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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