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임오군란'마저도 이용한 미개인들
1873년 민비의 세력에 의해 이하응(흥선대원군)은 힘을 잃고, 한 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이하응은 최익현과 척화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나랏일에 손을 대고 있었다. 이하응의 영향력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척화파들이 움직이려고 했으나, 마침 운요호 사건으로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다. 조선은 쇄국을 버리고 개국을 하게 되며, 개화의 길로 향하게 되었다. 이하응의 세력인 척화파들은 관직을 박탈당하고, 투옥되기도 했다. 그리고, 수구파, 개화파가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다. 결국 민 씨 정권이 시작되었고, 그들은 서양 열강들과 불평등 조약을 연이어 맺었다. 때문에 척화파와 민심은 요동쳤다. 삼정의 문란 때문에 위태로운 조선에 사회적 혼란과 불안은 더 증폭된다. 이하응은 나라의 위기를 자신들의 힘을 되찾는..
2021. 3. 1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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