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일본 거류민들의 폭동 '삼포왜란'의 숨은 공신은 '장무공 황형 장군'
태종 7년(1407년) 부산포, 내이포 개방. / 세종 8년(1426년) 염포를 개방. 왜인들을 통제하기 위해 3포(부산포, 내이포, 염포)를 개방하고, 왜관(倭館)을 설치하여 교역과 접대의 장소로 삼았다. 조선은 3포에 한하여 일본 무역선이 오고 갈 수 있게 허락하였고, 무역과 어로가 끝나면 60명에 한하여 거류민을 허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조선 조정의 명을 어기고, 점차 거주하는 왜인의 수가 늘어나면서 세종 말년에는 약 2,000명으로 증가했다. 조선의 관리들은 이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일본 거류민들을 압박했고, 자주 충돌이 발생했다. 몰래 거래하거나, 밀거래하는 상품도 늘면서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한다. 심지어 일본의 대마도주는 삼포에 자신들의 자치 조직을 만들었다. 더 나아가 면호를 공..
2021. 7. 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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