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청년 '백낙관', 남산 봉수대에 불을 지른 이유는?
백낙관(白樂寬)은 개항기 개화를 반대하는 척사 상소를 올린 유학자이다. 그의 본관은 남포(藍浦), 자는 경교(景敎)이며 호는 추강(秋江)이다. 충청남도 보령 출신으로 병조참판 백홍수(白弘洙)의 아들이다. 백낙관이 성장하는 동안 조선은 열강의 먹잇감으로 전락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은 정신 차리지 못하고, 제 밥그릇 챙기기에 미쳐있었다. 그뿐만인가? 왕실은 콩가루 집안으로 등극해 조선의 운명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특히 일본은 대놓고 조선 침략을 노골화시키는데, 조선은 아무런 대책 없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를 반복한다. 세도정치에다가 이하응과 민비의 싸움에 구한말 조선은 아주 대단했다. 조선 정치에 대한 의분한 청년 백낙관은 1880년(고종 17)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다. 하지만 상..
2021. 4. 8.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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