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유

 

한일 월드컵은 아시아에서 열린 첫 번째 FIFA 월드컵 대회이자 유럽과 아메리카 밖에서 열린 첫 대회이다. 그리고 한일 월드컵은 역사상 처음으로 두 국가에서 공동으로 개최되었다.

 

한일 월드컵은 공동개최라는 특징이 있지만, 그 밖에도 충격적인 결과와 이변이 유난히 많았던 대회였다.

 

전 월드컵 우승팀인 프랑스는 승점 1점을 얻고, 무득점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우승 후보였던 아르헨티나도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대한민국은 막강한 팀이었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준결승전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준결승에서 독일을 만나 안타깝게 패했고, 터키와의 3,4위전에서 패해서 4위를 차지했다.

 

세네갈은 개막전에서 프랑스를 꺾고, 16강전에서 스웨덴을 제압하고 8강에 오르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국가 간의 갈등 때문에?

 

아르헨티나, 브라질 전쟁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 4강! 다시 생각해도 그때의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꿈과 희망이 넘쳤던 월드컵, 그 당시 대한민국은 행복이 넘치고, 모든 국민들이 즐거워했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런데,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유는 뭘까? 일본이 뺏었다는 사람도 있고, 대한민국의 인프라가 좋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뜬금없게도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유는 국가 간의 갈등 때문이었다. 더 황당한 것은 한국과 일본의 갈등이 아니라, 남아메리카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국가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스페인의 지배를 받은 아르헨티나,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은 브라질, 지배국가가 달랐던 만큼 역사, 문화, 언어, 배경 등 모든 것이 달랐다. 또한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남미지역의 패권을 두고 다퉈왔었다.

 

여기서 우루과이가 등장한다. 우루과이도 아르헨티나와 함께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독립운동이 한창이던 시기 우루과이는 독립국가 건설을 시도했는데 브라질이 무력으로 우루과이를 침공했고, 실제로 브라질의 영토로 편입되었었다.

 

우루과이 주민들의 반발로 인해 결국 반란이 일어났으며, 결국 우루과이와 브라질은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 편을 들며 브라질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이 싸움은 유럽 국가들이 중재하여 종전이 되었고, 전쟁은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렇게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의 관계는 매우 좋아졌고, 두 국가와 브라질은 항상 관계가 좋지 못했다.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유

 

한일 월드컵 공동개최 이유

 

일본은 1989년 12월 FIFA 월드컵 유치 의사를 공식 표명했고, 1990년 6월에는 유치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렇게 일본의 월드컵 유치 활동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도 1993년 12월 13일 대한축구협회(KFA) 정몽준 회장이 FIFA 월드컵 유치 의사를 밝혔고, 1993년 1월 18일에는 유치위원회 발기위원회가 정식으로 열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몽준 회장이 1994년 5월 13일 FIFA 부회장으로 당선된다. 부회장은 개최국 결정 투표권을 가지는 집행위원이다.

 

결국 1995년 일본과 한국은 FIFA 월드컵 개최 제안서를 제출한다.

 

희망은 보였으나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국 축구는 현실을 보면 과욕이 아닌가?", "월드컵 16강에 오른 적은 있나?" 등

 

그래도 일본이 한국에 비해 경제력과 외교력, 국내 조건들도 유리한 편이었다. (경기장, 숙박시설, 교통시설 등)

 

 

 

주앙 아벨란제, 펠레, 마라도나

 

그 당시 FIFA 회장이었던 '주앙 아벨란제'는 브라질 출신이었다. 브라질과 일본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기 때문에 그는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지했다. 그리고 브라질 선수인 '펠레'도 일본을 지지했다.

 

그런데 '디에고 마라도나'는 한국을 지지한다. 그가 그렇게 주장한 이유는 국가적인 감정, 갈등 때문에 그냥 한국을 지지하는 것이었다.

그때 한국이 "일본은 월드컵 본선에 한 번도 진출하지 못한 저조한 성적인데, 월드컵 개최가 말이 되냐"라고 쏘아붙였다.

 

당시 EUFA 유럽축구협회 회장 '요한손'은 한국의 논리가 맞다며 한국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지역 위원들도 한국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요한손은 차기 FIFA 회장이 되기 위해 아벨란제를 견제할 목적으로 한국을 지지했다는 분석이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 함께 한국을 지지했고, 아르헨티나를 싫어하는 칠레는 일본을 지지했고, 칠레를 싫어하는 페루와 볼리비아는 한국을 지지했고, 볼리비아를 싫어하는 파라과이는 일본을 지지하며 국가 간의 갈등이 폭발했다.

 

게다가 정몽준 회장은 FIFA 회장 아벨란제 사무실을 찾아간 적도 있는데, 여기서 "남북한이 공동 주최한다면 한국이 2002년 월드컵 유치에 승리할 것"이라며 남북한 공동 개최에 대한 말도 나왔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지나친 유치 경쟁은 지속되었고, 남미도 역시 뜨거웠다. 어느새 분위기는 한국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이 공동개최를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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