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과 프로파간다 포스터

 

1917년 1월 22일,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은 의회 합동연설에서 이런 말을 한다.

 

"유럽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참 진행중이다. 우리 미국이 이 전쟁에 절대 참여해서는 안된다. 'peace without victory(승리 없는 평화)가 필요하다. 적에게 승리해 얻는 평화는 영원한 평화가 아닌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이 발언으로 미국 내에서는 찬반 여론이 크게 엇갈렸었다. 하지만 우드로 월슨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 인생 전반에 걸쳐 '반전'을 주요 키워드로 내세웠으며 많은 비난에도 신념을 꺾지 않았다.

 

 

 

(좌) 루시타니호 침몰 / (우) 아르투르 치머만

 

1915년 5월, 독일 제국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영국 상선 루시타니호가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루시타니호에 탑승하고 있던 미국시민 128명이 한꺼번에 사망했다. 그럼에도 우드로 월슨 대통령은 평화를 강조하며, 여론을 억눌렀다. 독일 제국은 사과도 하지 않았고, 인명 피해에 대한 배상 합의만 내밀었고, 그는 재빨리 수용해 사태를 일단락시켰다.

 

이 사건으로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인기는 급락해 1916년 재선에서 낙선할 뻔했다.

 

그리고 1917년 2월 24일, 독일 제국의 외무 장관이었던 '아르투르 치머만'이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에게 보낸 비밀 전보문을 보낸다. 내용은 멕시코 정부에게 미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제안하라는 지시였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입지는 점점 좁아졌고, 그는 결국 신념을 버리고 1917년 4월 독일 제국에 선전포고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시원찮았고, 남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어떻게든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다.

 

 


 

연방공보위원회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미국 모병 포스터

 

'연방공보위원회(United States Committee on Public Information)'가 탄생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연방 선전 기관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미국 국민들을 전쟁에 보내려는 의지였다.

 

여기서 탄생한 프로파간다 포스터가 "미합중국군은 당신을 원한다" 제1차 세계대전 모병 포스터다.

 

공보위원회(CPI)는 우드로 윌슨의 친구이자 덴버의 신문기자 출신 조치 크릴이 맡았다. 그가 공보위원회에 합류한 것은 '에드워드 버네이스(Edward Bernays)'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여기서 에드워드 버네이스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귀화 미국인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두뇌 회전이 빠른 선전가로 꼽힌다.

 

그는 그당시 미국에서 생소했던 인간심리학 분야의 전문가였다.

 

공보위원회는 전시에 미디어 검열관 노릇을 했다. 반독일 선전을 통해 의회가 방첩법과 반선동급지법을 통과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방첩법 제3조 - 전시에 전쟁을 위한 노력에 방해하려는 의도를 가진 성명을 내거나 보도를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즉, 비애국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우편물들은 압수하거나 거부할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사회주의자 유진 뎁스는 "역사상 전쟁이라는 것들을 보면 정복과 약탈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게 바로 전쟁의 본질이에요. 지배계급은 늘 전쟁을 선포만 했습니다. 실제 전투에 나가 싸우는 것은 늘 피지배계급이었습니다"

 

그는 1918년 6월 반전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고, 방첩법 위반 등 10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독일군

 

그리고 공보위원회는 대대적인 대중 선동에 나섰다.

 

"독일 병사들이 벨기에 아기를 총검으로 난도질했다, 독일 병사들이 벨기에 여인의 젖가슴을 도려냈다"는 식의 충격적 얘기를 퍼뜨림으로써 독일에 대한 원초적 적개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정보들은 보도자료 형태로 언론에 배포되었고, 매주 2만 건이 넘는 신문 칼럼이 공보위원회의 보도자료를 인용했다고 한다.

 

국민들의 적개심이 어느정도 올라오자 자원봉사단 4분 맨(Four - Minutes Man)을 꾸린다. 그들은 영화 시작 전에 전쟁 지지를 호소하는 연설을 4분간 했다.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7만 50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렸고, 이것은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이 뒤를 이어서 반독일 선전영화도 상영했다. <카이저 : 베를린의 야수>, <늑대 같은 독일 문화>, <타도하자 독일 황제> 등, 영화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인간의 가장 저열한 감정을 이용하다

 

에드워드 버네이스

 

정치학자 '헤럴드 라스웰'은 1928년 <세계 대전에서의 프로파간다 기술>이라는 책을 지었다. 이 책에서 크릴과 버네이스의 행적을 소상히 기록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 공보위원회(CPI)가 행한 선전 선동을 분석했다.

 

여기서 라스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쟁 기간에 병력과 자원의 동원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확고히 자리 잡았다. 여론도 동원해야 했다. 여론에 대한 지배력은 생명과 재산에 대한 지배력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현대 국가에서는 전쟁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이 강하므로 모든 전쟁을 위협적이고, 잔인무도한 침략자에 맞선 방어전으로 보이게끔 몰아가야 한다."

 

"잔인한 이야기는 늘 인기가 있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대중이 적에게 품은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느끼게 해주고, 또 어느 정도는 범죄 가해자와 스스로를 동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에게 강간당한 젊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는 피해국의 많은 남성들에게 은밀한 대리만족감을 준다."

 

버네이스는 1928년 저서 <선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시의 선전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자 일부 지식인들은 선전을 통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결국 이들은 국민을 선동해 호전적 애국주의에 광분하게 만들었고, 반독일 정서는 하늘을 찔렀다.

 

 


 

대한민국은 프로파간다

 

 

대부분의 대한민국 사람들은 동북아시아를 호령하던 고구려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조선과 임진왜란에 대하여는 모두가 사학자 교수급이다.

 

"왜군들은 어미의 젖가슴을 잘라, 아이가 굶어 죽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조총을 쐈다"

 

임진왜란 관련 드라마에서 꼭 등장하는 대사이다.

 

그당시 이순신 장군의 심정, 왜구들을 맞이하는 조선군사들의 두려움, 노를 젓다 보니 손에는 피투성이가 된 격군은 관심 밖이며, "나쁜놈의 왜놈새끼"라고 외친다.

 

나조차도 인간이고, 저열하기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생긴다.

 

집안에서 궁지에 몰리면 오랜 적개심을 선동하여 지지세력을 끌어모은다. 그것마저 힘들어지면 검찰개혁을 이야기하고, 형조판서가 어떠한 잘못을 한들 어떤가, 검찰이 표적이니 상관없단다.

 

나치의 선전부 장관 괴벨스가 이런 말을 했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 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민주노총 김선혁 충북본부장은 "국민이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을 만들어준 것은 민주당이 국민의힘보다 잘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해주는 법을 제발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당신들은 자만하고 있다. 당신들이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과 노동자들은 당신들을 다시는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운폴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독일의 한 장교가 괴벨스에게 "독일 국민돌격대가 무기 등 제대로 된 무장을 하지 않는다면 러시아군으로부터 개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이에 괴벨스는 "난 그들을 동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정했다. 그들이 우리를 뽑았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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