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대 미국 대통령 '조 바이든'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주니어(Joseph Robinette Biden Jr)

 

조 바이든은 1927년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로 젊은 나이에 상원의원의 자리에 올랐고,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이 되어 미국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대통령이 되었다.

 

조 바이든은 끝내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지만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권에 도전했으나 중도 사퇴를 2번이나 했다. 한 번은 정치 신예 '버락 오바마'에게 밀렸다.

 

정계에서 뼈가 굵은 인물이었는데, 참으로 비참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세 번의 대권 도전' 끝에 결국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

 

조 바이든은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말을 더듬던 아이

 

우측 사진 오른쪽 '조 바이든'

 

조 바이든은 미국의 동부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아일랜드계 가톨릭 가정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외가의 도움을 받았고, 11세 때 부모와 함께 델레웨어 윌밍턴으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그는 보기 드문 흙수저 출신이라고 한다.

 

하지만 넉넉했던 집안이었는데,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말도 있다.

 

조 바이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펜실베이니아는 고향, 델라웨어는 정치적 고향"

 

그는 어릴 적 '대시(모스 부호의 긴 점)'라고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말을 더듬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 때문에 친구들과 주먹다짐도 하고, 따돌림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여기서 조 바이든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 앞서가는 생각을 말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는 조약돌을 입에 물고 교과서 문단을 통째로 외우는 등 피나는 노력 끝에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정치 시작과 비극

 

 

조 바이든은 '델라웨어 대학교'에서 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했고, 시큐러스 법률전문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해 법학전문석사 학위를 얻었다. 로스쿨 졸업 성적은 85명 중, 76등이었다.

 

그리고 델라웨어 주 변호사 자격을 얻어 윌밍턴에서 활동했다.

 

미국 정부는 1946년 ~ 1973년까지 미국의 남성을 징집했었다. 조 바이든 역시 그 당시 징집 대상이었으나, 천식이 심해 군 징집에서 면제되었다고 한다.

 

24세에는 대학 동창이자 그의 첫사랑인 '닐리아'와 결혼해 세 자녀를 얻었다. 

 

그는 1970년, 하원의원(뉴캐슬 제4선거구)으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한다.

 

 

 

 

1972년,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상원의원(델라웨어 제2부)에 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공화당 현역이자 거물인 'J. 케일럽 보그스' 상원의원을 꺾으며 당선되어 파란을 일으켰다. 그렇게 조 바이든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졌다.

 

당시 조 바이든은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 민주당에서 별다른 기대하지 않았고, J. 케일럽 보그스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었다.

 

하지만 당선이 된 바로 다음날 아내와 1살이었던 딸이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두 명의 아들은 중상을 입었다. 그는 남은 어린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서 상원의원직을 포기하려고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 바이든은 아이들이 입원한 병실에서 눈물을 흘리며 취임 선서를 했다.

 

그의 상원의원 생활은 그렇게 비극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상원의원이었지만 수십 년간 델라웨어의 자택에서 워싱턴 의사당까지 매일 '암트랙 기차'로 왕복 4시간 거리를  통근했다고 한다.

 

어떤 나라 국회의원은 첫날부터 검은색 고급 차량을 타고 출근하던데..

 

이게 끝이 아니다. 살아남은 장남 '보 바이든'은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을 거쳐 정치적 후계자로 여겨졌으나 2015년, 45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사망한다. 조 바이든은 충격으로 2016년 대선 출마를 포기한다.

 

그에게 남은 마지막 차남이었던 '헌터 바이든'은 마약중독, 탈세, 비리 의혹 등으로 아버지의 정치 경력에 흠집을 냈다. 뿐만 아니라 형수와 동거를 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세 번째, 대통령 출마

 

'조 바이든'과 '질 바이든'

 

조 바이든은 1977년 '질 트레이시 제이컵스'와 재혼했고, 딸을 얻었다.

 

비극의 끝을 달렸던 가정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조 바이든을 도왔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는 순간, 미국 국민들은 그를 연민하게 된다. '시사주간지 타임'에서는 "미국은 50년간 바이든이 슬픔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에게 마음의 빚을 졌다"라고 했다.

 

조 바이든은 2020년 대선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로 사랑하는 이를 잃거나 의료비 폭탄을 맞게 된 서민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힘들었지만 기죽지 않았고, 특유의 친화력과 대중적인 이미지를 통해 미국 국민들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것에 성공한다.

 

1988년, 첫 번째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중도 사퇴한다.

 

2008년, 두 번째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지만, 경선 과정에서 '버락 오바마'에게 밀려 중도 사퇴한다. 그러나 오바마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해 대선에 승리하며 미국의 47대 부통령으로 취임한다.

 

2012년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해 부통령직을 역임했다.

 

2016년, 2015년에 장남이 사망하자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다.

 

2019년 4월, 조 바이든은 다시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며 세 번째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 마지막으로 경합을 벌이던 '버니 샌더스'가 4월에 중도하차를 선언하며 조 바이든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그는 백악관으로 가는 과정도 순탄하지 못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대유행과 함께 현역 대통령의 선거 결과 불복이라는 혼란 끝에 제46대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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