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탈감과 증오를 이용한 '히틀러 선동'

 

'유대인이 언론과 자본을 장악하고,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 

 

'반유대주의' 오스트리아 빈의 정치선동가 '카를 뤼거(Karl Lueger)'의 연설 중 나왔던 말이다. 그의 연설을 듣고 미치기 시작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였다.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유대인의 손에 있고, 언론계의 상당 부분도 그들이 장악하고, 자본, 특히 거대 자본의 대부분이 유대인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나라 독일에서 상상할 수 없는 최악의 테러를 행하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전율을 느끼고, 심장이 멎는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히틀러는 뤼거의 말에 공감을 하고, "아! 이것이다"라며 나치를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그는 유대인들이 세계를 정복하려 한다는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일과 이 세상에서 유대인을 청소해야 한다는 생각마저 했다고 한다.

 

 


 

박탈감과 증오를 이용한 '히틀러 선동'

 

박탈감과 증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에 대한 배상금 부담, 대공항으로 인해 경제가 말이 아니었다. 당시 국민들은 빈곤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갔고, 하필 사회주의 사상도 날뛰어 항상 불안했다.

 

사람들은 이 끔찍한 고통을 누군가에게 옮겨야 했다. 극단적인 사람들은 '속죄양'을 찾기도 했다.

 

*속죄양(贖罪羊) - 유대교인들이 속죄일에 제물로 바치는 양이나 염소, 남의 죄를 대신 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여기서 선한 정치인들은 우선 국가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 힘을 썼지만, 악한 정치인들은 박탈감과 증오를 이용해 선동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고난하고 힘든 길 대신 새 치의 혀로 국가를 병들게 하기 시작했다.

 

특히, 히틀러는 그 틈을 정확하고 빠르게 파고들었다.

 

그들의 박탈감과 그 틈을 유대인에 대한 반감과 증오를 부추기며 채워갔다. 독일인들은 결집했고, 그렇게 히틀러는 발판을 마련해 뮌헨의 주요한 투사, 선동가가 되어 '나치' 디자인을 그리기 시작한다.

 

 

 

히틀러 선동

 

그는 독일 노동자당에 입당하여 당기를 디자인하고, 당명은 '독일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NSDAP)' 일명 '나치스'로 바꾸고 나치를 완성한다. 히틀러는 이때부터 술과 담배, 여자를 멀리 했다고 한다. 그는 분노와 꿈을 오로지 연설을 통해 해소하기 시작했다. 많은 국민들도 그의 연설을 통해 박탈감과 증오를 해소했다.

 

유대인을 '지구에 존재하는 가장 악한 인종'으로 규정하며 1933년 ~ 1945년까지 유럽 거주 유대인 600만 명 이상을 학살하게 된다. 반유대주의로 물든 독일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시체를 밟으며 나아갔다. 히틀러의 반인류적 범죄에도 그들은 지지했고, 히틀러가 죽어서야 끝이 났다.

 

 

 

우리의 박탈감을 이용하는 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우리 청년들은 어떠한가?

 

우리들 역시 위험에 처했다. 정치인들은 우리의 박탈감과 증오를 이용해 번식하고 있다. 우리들의 박탈감과 증오는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취업을 하지 못한다. 돈이 없다. 집을 사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는 어둡다....

 

우리 청년들의 적은 누구인가? 대기업과 삼성, 부자들? 만약 저들의 말대로 기득권과 기업 재벌들만 잡는다면 우리들의 문제는 해결될까? 웃긴 건 잡는다는 그들도 기득권층에 속하며 해마다 부는 계속 늘어난다.

 

독일의 나치는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지지했던 국민들은 박탈감과 증오를 잊기 위해 기득권이었던 유대인을 이용했다. 그리고 무참하게 학살한다. 그 결과 독일은 분단이 되었고, 그들의 고통은 극에 달했다. 그렇게 불안해하던 사회주의 사상마저 맞이해야 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변해야 하며, 그들에게 이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항상 고통은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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