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였다. 그는 코르시카섬 출신의 하급 귀족으로 시작해 프랑스혁명의 혼란한 시대 속에서 탁월한 군사적 재능을 이용해 프랑스를 승리로 이끌며 유럽의 모든 열강들을 굴복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코르시카섬 - 지중해 북부 사르데냐섬 북쪽 보니파시오 해협 사이에 있는 프랑스령 섬
나폴레옹이 전쟁사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는 전술과 전략, 훈련, 조직, 군수, 의복과 포상제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전반적으로 선진화시켰다.
그가 육성한 프랑스 육군은 유럽을 넘어 당시 전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조직된 선진화된 군대였고, 결국 유럽의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 육군을 따라갔다.
나폴레옹의 군인 시절은 어땠을까? 그는 무려 24세에 사단장이 될 정도로 뛰어났다.
나폴레옹은 24세에 사단장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었는데, 특히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즐겨 읽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집안 살림이 어려워서 형 조제프와 함께 학비가 없는 수도원 부속학교인 도툉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곧바로 그만두고 1779년,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브리엔뉴 육군유년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1784년에는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나폴레옹은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에 뛰어난 성적을 보였다고 한다. 수학을 잘한 데다가 작은 키와 빈약한 몸매 때문에 수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졸업 시험 성적은 58명 중, 42위였지만, 통상 재적 시간이 3년인 곳을 11개월 만에 모두 수료했다고 한다. 그는 1785년 11월 30일, 16세의 어린 나이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프랑스 육군 소위로 임관되어 남프랑스의 포병 부대에 배속되었다.
그는 프랑스 장교가 되었지만 코르시카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았다. 코르시카 독립운동으로 지도자인 파올리를 숭배하면서 프랑스를 결코 자기의 조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이때도 공부는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교육을 받으면서도 전략과 전술에 관한 책들을 많이 읽었다.
1798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 그는 코르시카로 귀향하게 된다. 코르시카에서 파올리와 합세하지만 파올리는 나폴레옹을 대의명분을 버린 자, 프랑스 앞잡이의 아들에게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그리고 1791년, 다시 코르시카로 돌아가 국민방위군 중령으로 선출되지만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에게 전쟁을 선포하여 다시 파리로 되돌아가게 된다. 나폴레옹은 대위로 진급했으나 연대로 복귀하지 않고, 1792년 코르시카로 돌아간다.
코르시카에서는 파올리가 독재권을 쥐고 코르시카의 독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에 나폴레옹은 파올리의 정책에 반대하는 코르시카 자코뱅당에서 활동한다. 1793년 내란을 일으킨 파올리가 '보나파르트 가문'을 탄압하자 나폴레옹의 집안은 모두 프랑스로 이주한다.
다행히 프랑스는 연합군과 전쟁으로 군 장교가 필요했던 시기라 복귀할 수 있었다. 나폴레옹은 1793년 말, 프랑스군 대위로 근무하고 있었을 때, '툴롱 공성전'에서 큰 공을 세워 임시로 준장으로 임명이 된다.
그리고 1794년 공안위원장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실각하여 처형이 되면서 로베스트에르의 남동생인 '오귀스탱'과 친분이 있었던 나폴레옹은 감옥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석방 후, 총재 정부의 '파울 바라스'에게 등용이 된다.
그리고 그는 1795년 10월 5일 파리에서 일어난 왕당파의 봉기에 수도 시가지에서 대포를 쏘는 대담한 전법을 사용한다. 그렇게 왕당파 반란군을 진압하고, 최초의 무훈을 세워 나폴레옹은 젊은 나이에 사단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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