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자명고'

 

대무신왕 시기의 고구려는 한창 영토를 넓혀 나가는 중이었다. 항상 위협적이었던 부여가 약해지면서 고구려는 남쪽의 국가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한반도 남쪽에서는 낙랑국이 가장 강력한 나라였다. 낙랑국의 왕은 최리였고, 그의 딸이 바로 낙랑공주이다. 그리고 고구려 대무신왕의 아들이 호동왕자이다.

 

낙랑국은 넓은 평야지대와 항구를 가진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고조선의 옛 중심지였기에 고구려가 꼭 손에 넣어야 할 국가였다.

 

고구려는 강력한 국가였지만 낙랑국을 쉽게 공격하지는 못했는데, 그 이유는 낙랑국에 굉장한 보물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북과 나팔이었는데, 이 북과 나팔은 외적이 공격해오면 저절로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 보물들로 적국의 공격에 미리 대비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가 섣불리 공격을 할 수 없었다.

 

자명고는 이 북을 말한다.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만남

 

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자명고'

 

호동왕자가 옥저 지방(지금의 평안북도와 함경남도)에서 사냥을 하면서 낙랑국을 염탐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호동왕자는 낙랑국의 왕인 최리를 만나게 되었다.

 

호동왕자는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었는데, 최리왕은 그에게 호감을 가지고 "그대의 얼굴을 보니 보통 사람이 아닌 듯한데 혹 북쪽 나라의 신왕의 아들이 아니오?"라고 물었다. 

 

호동왕자는 "그렇습니다, 저는 고구려의 왕자 호동이라고 합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고, 최리왕은 낙랑국과 고구려가 서로 이웃나라이므로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며, 낙랑국으로 데리고 가 대접을 하였다.

 

최리왕은 강력한 국가인 고구려가 언젠가 낙랑국까지 정벌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사전에 막고자 했다. 그 방법이 자신의 딸인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를 결혼시키는 것이었다.

 

호동왕자는 강력한 국가의 왕자이고, 외모도 잘생겼기 때문에 자신의 딸에게도 좋은 배필이 될 것이라고 여긴 최리왕은 궁궐로 돌아와 호동왕자와 낙랑공주를 결혼시켰다. 

 

 


 

호동왕자의 결혼조건

 

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자명고'

 

당시의 결혼 풍습은 남자가 여자의 집에서 먼저 식을 올린 후, 나중에 남자의 집으로 여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다. 따라서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와 결혼한 후 먼저 고구려로 돌아가 이 사실을 대무신왕에게 알리고 낙랑공주를 고구려로 데려가야 했다.

 

하지만 호동왕자를 사랑한 낙랑공주와 달리 호동왕자는 낙락공주를 사랑하지 않았다.

 

고구려로 돌아간 호동왕자는 비밀리에 낙랑공주에게 뜻을 전했다.

 

"나는 고구려 왕자요. 그대가 낙랑국의 무기고에 들어가서 보물인 북과 나팔을 부수어 준다면 나는 그대를 예의를 다하여 아내로 맞아들이겠소. 그러나 나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대와의 결혼은 없던 일로 할 것이오."

 

 


 

낙랑공주의 무모한 선택

 

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자명고'

 

낙랑공주에게 말도 안 되는 결혼 조건을 전한 호동왕자는 낙랑국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둘째 부인의 아들이었기 때문에 자신이 왕이 되기 위해서는 낙랑국을 점령하는 큰 공을 세워야 했다.

 

호동왕자를 사랑하고, 그가 돌아간 뒤로 그리움에 힘들어하던 낙랑공주는 고민 끝에 사랑하는 호동왕자를 위해 자명고를 부수기로 마음먹었다. 낙랑공주는 무기고에 몰래 들어가 자명고의 가죽을 찢고, 나팔의 주둥아리를 부순 뒤 호동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호동왕자는 이 사실을 대무신왕에게 알린 뒤 바로 군사를 이끌고 낙랑국을 공격했다.

 

낙랑국의 최리왕은 고구려군이 수도에 도달하고 나서야 자명고와 나팔이 망가진 것을 알았고, 그 일을 자신의 딸인 낙랑공주가 했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화가 난 최리왕은 낙랑공주를 죽이고 고구려군에 항복했고, 낙랑국의 수도는 서기 32년에 함락되었다. 그리고 대무신왕은 5년 뒤 다시 군사를 보내 낙랑의 잔여세력을 완전히 멸망시켰다.

 

 


 

낙랑국 때문에 죽은 호동왕자

 

이미지 출처 - SBS 드라마 '자명고'

 

낙랑국을 무너뜨린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은 총애를 받고 있었다. 대무신왕은 첫째 왕비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아닌 둘째 부인의 아들인 호동왕자가 태자가 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때부터 첫째 왕비는 호동왕자를 모함하기 시작했다. 왕비는 대무신왕에게 호동왕자가 자신을 어머니로 보지 않고, 음란한 눈빛을 보낸다며 자신에게 흑심을 품고 있다고 모함을 했다. 처음에는 대무신왕도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계속되는 주장에 호동왕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대무신왕은 결국 호동왕자를 벌하려 했고, 호동왕자 또한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변명을 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돌아올 것을 염려했다.

 

자신은 왕이 되지 못할 것이고, 왕비의 아들이 왕이 되면 결국 자신은 죽을 목숨이라고 판단한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을 설득할 것을 포기하고 말했다.

 

"내가 변명을 한다면 어머니가 못된 마음을 가졌음이 드러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대왕께서 얼마나 마음의 상처를 입으시겠는가. 이는 효도하는 마음이 아니다."

 

그리고 호동왕자는 스스로 칼을 꽂아 자결하였다.

 

왕자로서 불리한 입장이었던 호동왕자는 자신이 살기 위해 낙랑국을 멸망시키는 공을 세웠지만 그 공으로 인해 모함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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