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장영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5월조에 보면 태종 이방원의 기일(忌日)인 매년 음력 5월 10일에는 비가 오는데, 이 비를 태종우(太宗雨)라 한다.

 

태종이 죽을 때 세종에게 말하기를 가뭄이 바야흐로 심하니 내가 죽어 혼이 있다면 이날 비가 내리게 하겠다고 하였다. 놀랍게도 그날이 되면 비가 왔다고 한다.

 

그 당시 조선은 가뭄이 매우 심하였다고 한다. 태종이 상제(上帝)에게 비를 내려달라고 빌었다는 기록이 있다. 어느 날은 땡볕 아래 종일토록 앉아 하늘에 빌었다는 내용도 있다.

 

* 상제(上帝) - 하늘을 다스린다는 신(神)

 

 

또한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심해지고, 백성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 매우 힘들었다. 논에는 5~6월에 강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태종은 수리(水利)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태종은 수리사업에 전념했고, 고려말 이래로 파괴되어온 벽골제(저수지 둑)의 보수를 대규모로 실시했다.

 

* 수리(水利) - 물을 식수, 관개용, 공업용 등으로 이용함.

 

 


 

오랜 가뭄으로 백성들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의하면 태종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태종 이방원의 말년에는 큰 가뭄이 닥쳤다.

 

비가 내리지 않아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지방의 논이 갈라지고, 밭은 타들어 갔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부족해 풀뿌리로 먹을 것을 대신하며 먹을 것을 찾아 헤매었다.

 

이렇게 힘든 나날이 지속되자 민심은 흉흉해지고, 백성들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태종은 각 고을 관찰사들을 불러 민심을 수습하지 못하는 것을 꾸짖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군도'

 

곡식도 없고, 먹지 못해 굶은 백성들 사이에 괴질(병)이 돌아 백성들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괴질 - 병의 원인과 본태를 알 수 없는 이상한 병을 가리키던 말

 

 

그 말을 들은 태종은 가뭄 속 땡볕 아래 종일토록 앉아 하늘에 빌었다. 제발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태종이 근심하여 이르기를, "가뭄이 이토록 극심하면 백성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죽어서라도 마땅히 하늘에 고하여 곧 단비를 내리게 하여,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게 하겠노라" 하였다.

 

 


 

태종우(太宗雨)

 

태종우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태종은 죽기 전까지 기우를 위해 노력했다.

 

승하하기 직전 태종은 말했다.

 

"내가 죽어 영혼이 있다면 반드시 이 날만이라도 비를 내리게 할 것이다"

 

"내 마땅히 옥황상제님께 빌어 한바탕 비가 오게 하여 우리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리라"

 

그 후 태종의 기일인 음력 5월 10일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비를 '태종우'라 불렀다.

 

태종이나 이방원이라 하면 폭군, 칼의 군주 등 안 좋은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보면 태종 이방원은 매우 백성들을 아낀 군주 중의 한 명이다.

 

드라마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군주로 많이 해석된다. 하지만 그가 정말 그러했다면 땡볕에 하루 종일 앉아 백성들을 위해 빌었다는 것이 말이 될까?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장영실'

 

태종은 조선 제3대 임금으로서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잘 다스린 임금이라 볼 수 있다. 비가 내리게 기다리기만 한 것이 아니라, 수리사업에 관심도 많았고, 전념하는 모습도 보였다. 어떻게든 수리사업을 성공시켜 비가 내리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게끔 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가뭄을 최대한 극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쏟아부은 태종 이방원의 진심이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태종우'라는 이름이 지금까지 전해진 것이 아닌가 싶다.

 

많은 피를 보았지만 백성들에게 있어서 태종 이방원은 군주로서의 책임감이 강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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