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굴비는 밥도둑으로 유명한데, 그 '굴비'라는 이름에는 놀랄만한 역사가 숨어있다.

 

굴비는 조기라는 생선에 소금 간을 하여 꼬들꼬들하게 말려서 만드는 것으로, 조기는 사람의 기운을 복 듣아 주는 고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이하게도 굴비는 한자로 '굽을 굴'에 '아닐 비'를 써서 굽히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 굴비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문벌 귀족인 이자겸이 유배를 가서 지은 것인데, 이자겸은 비록 자신이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담은 굴비를 임금에게 보냈다고 한다.

 

 


 

이자겸은 누구일까?

 

 

고려는 각 지역의 호족들을 규합하여 만든 나라이며, 중기로 접어들면서 지방의 호족들과 중앙 관료들이 세력다툼을 하여 점점 문벌귀족사회로 변해갔다.

 

이때 중앙의 문벌귀족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혼인을 이용했다. 즉, 자신의 딸을 왕에게 시집보내어 왕실의 외척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외척으로서 왕을 쥐락펴락하고 권력을 움켜쥔 대표적인 가문은 인주이씨 가문이며, 이자겸은 이 가문 사람으로 스스로 왕이 될 야망까지 품을 정도로 강한 권력을 가졌었다.

 

 


 

권력에 눈이 먼 이자겸

 

 

이자겸은 자신의 둘째 딸을 예종의 왕후로 들여보냈고, 그 딸이 훗날 인종을 낳으면서 권력을 다시 잡게 되었다. 그러나 인종의 나이가 14세일 때, 예종이 위독해지자 신료들은 어린 인종보다는 예종의 동생에게 왕위를 계승하길 바랬다.

 

이때 위태로웠던 인종을 이자겸이 도와 왕위를 계승할 수 있게 힘썼다. 이자겸은 인종이 즉위하자마자 정권을 독차지하고,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셋째, 넷째 딸을 인종과 결혼시키는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렀다. 

 

고려시대 왕실에서 근친결혼이 성행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모와의 결혼은 당시에도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눈이 먼 이자겸은 인종의 외할아버지이자 장인으로서 어린 임금을 앞세워 권력을 휘둘렀다.

 

 


 

방자함의 끝판왕

 

이미지 출처 - SBS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권력을 독점한 이자겸은 자기 족속을 요직에 앉히고, 관직을 팔았으며, 스스로 국공이 되어 예우를 왕태자와 같게 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신료들을 모두 역적으로 몰아 유배 보내거나 죽였다.

 

더욱 권력에 미친 이자겸은 심지어 인종을 손가락질로 부르기까지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에 의친궁 숭덕부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의 생일을 인수절이라고 불렀다.

 

* 생일에 절을 붙이는 것은 왕이나 태자에게만 허락되는 것.

 

 

외교에서도 이자겸은 자신이 왕인양 사적으로 송나라에 사신을 보내 표를 올리고, 토산물을 바쳤으며, 스스로 지군국사라고 칭하였고, 마음대로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군신관계를 맺기도 했다.

 

* 지군국사 - 국사를 처리하는 직책.

 

 

방자함의 끝을 달리던 이자겸은 결국 난을 일으키고 자신이 거의 왕이었다. 더 나아가 인종을 살해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자신의 딸이자 인종의 2번째 왕후로 인해 계획은 실패했다.

 

이자겸은 다시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오려고 했고, 인종은 이자겸의 부하인 척준경을 회유하여 그를 영광으로 유배 보냈다. 

 

 


 

귀양 가서도 꺾이지 않은 존심

 

 

영광으로 유배를 간 이자겸은 영광 법성포의 특산물인 건조한 참조기의 맛에 반했다. 그는 건조한 참조기에 굴비라는 이름을 지어 인종에게 진상하였다.

 

굴비라는 이름을 지은 것은 비록 자신이 귀양살이를 하고 있지만 절대로 굴복하거나 꺾이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 달리 유배된 지 1년도 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값비싸고, 맛 좋은 굴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인간이 지은 이름이었다는 게 놀랍다. 앞으로 굴비를 먹을 때마다 이자겸이 생각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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