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 살았던 군주라 하면 당연히 '영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영조는 8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으나 고구려의 제6대 국왕 태조왕은 무려 119살에 사망하여 한국 군주 중 가장 오래 살았다.
태조대왕(太祖大王)은 성은 고(高), 어릴 적 이름은 어수(於漱) 였으며 휘는 궁(宮)이다. 태조왕은 오래 살기도 했지만 가장 오랫동안 군림한 군주로도 기록이 되어있다. 무려 93년 고구려를 군림했다.
태조왕은 고구려를 강력한 중앙집권국가 수준으로 끌어올린 왕이며, 그의 업적은 나라를 세운 것에 버금간다고 해서 국조왕(國祖王)이라고도 불린다.
기록에는 태조왕은 태어날 때부터 눈을 떴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눈을 뜨지 못하는데, 태조왕은 눈을 뜨고 있었다니 얼마나 총명하고 대단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나이에 즉위한 태조왕
53년에는 두로(杜魯)가 모본왕(고구려 제5대 왕)을 살해한 후, 고재사(태조왕의 부친)을 추대했으나, 연로함을 이유로 거절하고, 아들인 '태조왕'을 추대했다. 그렇게 7살의 어린 나이로 고구려의 국왕이 되었다.
태조왕의 나이가 너무 어려 처음에는 여태후(고재사의 부인)가 수렴청정을 했다. 기록에는 자세히 나와있지 않으나 기간은 대략 18세에서 22세까지 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태조왕 중앙집권국가로
55년에 태조왕은 요서 지역에 10개 성을 쌓아 후한의 침공을 대비했다. 56년에는 동옥저를 병합하여 동으로는 창해(滄海, 동해바다), 남으로는 살수(薩水, 청천강)에 이르렀다.
68년에는 갈사국(曷思國) 왕의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했고, 그를 우태(于台)에 임명했다.
갈사국(曷思國) - 압록강 부근에 세운 소국
70년에는 관나부(貫那部)의 패자(沛者슬) 달가(達價)를 보내 조나(藻那)를 정벌하고 그 왕을 포로로 삼았다. 그리고 끝내 병합하였다.
관나부(貫那部) - 관노부의 다른 이름, 고구려 5부 중 하나
패자(沛者) - 고구려 때 왕을 보좌하던 재상급 벼슬
조나(藻那) - 고구려 초기에 만주 지역에 있었던 소국
72년에는 환나부(桓那部)의 패자 설유(薛儒)를 보내 주나(朱那)를 공격하게 하여 그 왕자 을음(乙音)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왕자를 고추가에 임명했다.
환나부(桓那部) - 고구려 5부 중 하나, 순노부와 같은 것으로 보기도 하였음
주나(朱那) - 고구려 건국기 압록강 유역에 있었던 소국
고추가 - 왕의 종족, 절노부, 소노부 등 대인들에게 주어진 벼슬
태조왕의 주변 소국을 정벌한 기록은 중앙집권화의 증거로 여겨진다. 98년에는 책성(柵城)으로 태조왕이 직접 살피며 순방했으며, 114년에는 남해(南海)를 순수(巡狩) 하며 확장된 영역에 대한 중앙의 통제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순수(巡狩) - 임금이 나라 안을 두루 보살피며 돌아다님
태조왕은 후한과의 대외 관계에서는 평화적인 외교와 적극적인 공세를 함께 펼쳤다. 105년에는 요동군을 공격하여 약탈했고, 109년과 111년에는 평화적인 외교를 펼쳤다.
118년에는 예맥(濊貃)과 더불어서 현도군(玄菟郡), 화려성(華麗城)을 공격했다.
121년 봄에는 후한이 예맥을 공격했고, 태조왕은 수성(차대왕, 고구려 제7대 왕)을 보내 막도록 했다. 수성은 항복을 가장하여 적군을 속인 후 요지를 장악했으며 몰래 요동군과 현도군을 공격해 큰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태조왕은 요동의 선비족과 더불어 요수현(遼隧縣)을 공격하여 요동태수 채풍을 죽이는 등, 서북면의 영토를 넓혀갔다.
예맥(濊貃) - 고대 만주이역에 거주한 한국의 종족 명칭을 가리키는 역사용어
현도군(玄菟郡) -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군으로서 한사군의 하나
그리고 태조왕은 정치체제 확립에 힘써서 부족국가 형태를 중앙집권적 형태로 체제를 정비하여 계루부가 왕위를 계승하였으며, 이후 고구려 왕 세차(世次)의 확실한 연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고구려가 실질적인 국가로서의 면목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계루부(桂婁部) - 고구려 5부 중 하나. 고구려 왕실을 일으킨 고씨의 출신 부족
세차(世次) - (단체나 가족 구성원 간의) 나이의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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