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2년 9월 1일 11:29, 일본 간토지방 전역, 시즈오카(靜罔)·야마나시(山梨) 초강력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는 무려 7, 9.... 점심에 집에서 밥을 짓기 위해 불을 지피고 있어서 대화재로 이어졌다. 때문에 도쿄, 요코하마 지역, 관동 지역 일대가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 약 12만 가구의 집이 지진으로 무너지고, 45만 가구가 불에타버렸다.
행방불명, 사망자 - 14만 명
이재민 - 340만 명
야마모토 곤노효에 내각은 사태수습을 했으나 혼란은 더 심해졌다.
국민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썩은 발상을 한다. 그당시 일본은 공황으로 노동운동, 농민운동, 부락해방운동이 사회를 뒤흔들었다.
일본은 '과격사회운동취제법' 제정을 시고하고, 탄압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관동대지진, 일본 국민의 보수적 감정을 잘 이용했던 것이다.
1923년 9월 1일 오후 경시청에서 정부에 출병요구 요청과 함께 계엄령 선포를 준비한다. 다음 날 동경, 가나가와현의 각 경찰서 및 경비대로 재일한국인에 대한 유언비어를 조직적으로 유포시킨다.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방화하였다', '우물에 조선인이 독을 넣었다.'
민심이 극도로 불안해지자 계엄령을 선포한다.
아무 근거도 없는 소문이 일본 경찰 조직의 비상 연락망을 통해 확대되기 시작한다. 공작대를 조직해서 방화, 우물에 독극물 투입, 투탄 등 테러행위를 자행한다.
그리고 자경단을 조직해 경찰들과 함께 조선인은 무조건 체포하고, 구타했으며 학살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죽었다......
"일본 군인들이 일제히 칼을 빼 조선인 83명을 한꺼번에 죽였어요. 임신한 부인도 한 사람 있었는데, 그 부인의 배를 가르고 어린 아기까지 찔러 죽이는 걸 봤습니다."
-관동 대지진 증언 기록-
일부 자국민 일본은 왜? 죽임을 당했는가?, 발음 때문에 죽었다고 한다.
15엔 ( 일본어 : 쥬고엔 ) '쥬' 는 탁음이라 발음이 독특하다. 조선인은 '주고엔', 추고엔'이라 발음했는데, 이렇게 발음하면 죽임을 당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인도 제대로 발음을 못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살해된 사람은 3000명 ~ 6000명 추정, 더 많다는 말도 있다.
그 당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 후 경제대공항으로 인해 힘들었다.
게다가 대지진으로 국가적으로 큰 위기에 처했다. 지진에서 입은 총 피해액은 65억 엔. 그들은 나라의 위기를 조선인, 사회주의자, 일본인을 학살로 뒤덮었다.
죽창, 일본도, 곤봉, 철봉 등 다양한 무기로 한국인들을 붙잡아 무차별 도륙하였다. 경무서내로 도망친 한국인들까지 자경단이 쫒아와 학살했다. 하지만 일본 관헌은 방조했다.
일본 정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
우리가 똑바로 알지 못하고,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관동대지진은...
목격자와 피해자들은 이세상에 계속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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