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SBS드라마 연개소문 / 고구려 영양태왕

 

우리는 고구려 살수대첩의 을지문덕 장군, 온달 장군 등, 명장들은 잘 기억하면서 정작 영양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만약 영양왕이 아니었다면 그분들의 찬란한 업적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고구려 26대 영양왕(嬰陽王 재위 : 590 ~ 618년)은 재위 기간 동안 수나라의 침략을 네 차례나 받았지만, 모두 물리친 태왕이었다. 

 

590년 영양왕이 즉위했을 때, 5~6세기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는 고구려를 포함하여 중원의 남조(南朝)와 북조(北朝) 그리고 북방의 유연과 돌궐로 5강을 이루며 서로를 견제했다. 고구려는 타국가에 비해 평화로웠고, 경제나 문화 등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다.

 

 

 

이미지 출처 - SBS드라마 연개소문

 

그런데 589년 양자강 유역의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통일한 국가가 탄생한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수나라'이다. 수나라의 등장으로 고구려의 평화는 위기에 놓였다.

 

수나라는 우선 후방에 있는 돌궐을 이간정책으로 동과 서로 분열시킨 뒤, 585년에는 동돌궐을 굴복시키고, 서돌궐마저 약화시킨다. 그리고 수나라의 초대 황제 문제(文帝, 재위 : 581 ~ 604)가 즉위하고부터는 초강대국의 지위로 격상되었다.

 

수나라는 동아시아의 패권질서를 재편하면서 고구려는 전쟁이나 굴복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평화에 취한 대부분의 붓잡이들은 화친을 원했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명장들은 전쟁을 원했다.

 

영양왕은 수나라와의 전쟁을 선택했다.

 

 


 

고구려 영양왕, 수나라에 선제공격

 

이미지 출처 - SBS드라마 연개소문 / 영양태왕 선제공격

 

수나라 문제는 강대국인 고구려를 가만히 둘리 없었다. 수나라는 조서를 보내 성의와 예절을 다해 복종 할 것을 요구했다.

 

영양왕은 수나라와 전쟁이 불가피하다 판단했다. 당시 수나라는 4,600만의 인구를 가진 세계 최고의 대국이었으며, 군사력도 최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양왕은 이에 개의치 않았고, 방어 전략이 아닌 선제공격에 나섰다.

 

영양왕은 598년 2월, 궁성을 나와 요동까지 말을 타고 간뒤, 말갈인으로 구성된 만명의 기병과 함께 요서 지역을 기습 공격했다. 그는 수나라의 전진기지와 보급기지들을 파괴하고 퇴각했다.

 

 


 

수나라 문제의 공격을 막아낸 고구려의 영양왕

 

 

영양왕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수나라 문제의 자존심이 크게 무너졌고, 문제는 즉시 자신의 4남 양량과 고경, 왕세적, 주라후 등에게 고구려를 공격할 것을 명했다.

 

양량의 군대는 요서 지방으로 진군했으나 군량 수송이 원활하지 못하여 군사들이 굶주리고 역병에 걸린 데다 장마까지 겹쳐 퇴각했다. 왕세적의 군대는 영주에서 퇴각했고, 주라후의 해군은 폭풍을 만나 대부분이 죽었다.

 

수나라의 패배가 자연재해 때문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영양왕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군량 수송에 문제가 생겼던 것이다.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저 과정에 크고 작은 전투들이 수나라 패배의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수나라 문제는 전쟁에서 패한 뒤, 고구려를 굴복시키겠다는 전략을 완전히 포기하였다.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영양왕의 과감한 선택은 고구려에 평화를 가져왔다.

 

 


 

수나라 양제의 3번의 공격과 멸망

 

이미지 출처 - SBS드라마 연개소문

 

수나라 문제의 아들인 양제는 113만 대군을 동원하여 고구려를 공격했다. 하지만 영양왕은 미리 외교 교섭, 신라 견제 등 수나라와의 전쟁에 대비를 해두었다.

 

따라서 이 전쟁은 요동성 방어 전투, 평양성 전투, 살수대첩 등으로 인해 고구려의 완승으로 끝났다.

 

우리는 전쟁영웅인 을지문덕 장군 등을 기억하지만 사실 영양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영양왕은 외교와 내치에 집중을 했고, 그 결과 을지문덕 장군이 살수대첩에서 청야전술을 실시하여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청야전술이란 적이 이용할 식량과 물자를 없앰으로써 적을 지치게 만드는 전술이다. 고구려인들은 적에게 식량을 주지 않기 위해 들판을 모두 비우고 성에 피신하는 단결력을 보여주었다.

 

영양왕의 내치가 성공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613년 수나라는 30만 대군으로 다시 고구려에 재침입하였고, 고구려는 요동성에서 이들을 물리쳤다.

 

영양왕은 614년 수나라가 또 공격을 해오자 이미 항복한 수나라 병부시랑 곡사정을 되돌려 보냄으로써 싸우지 않고 적을 퇴각시켰다.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많은 국력을 소비한 수나라는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618년 멸망하였다.

 

하지만 요동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에 고구려의 피해도 컸다. 영양왕은 수나라 포로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고구려에서 정착하여 살도록 해주었고, 이들과 함께 복구 사업을 하였다.

 

영양왕이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고구려의 국제 위상이 하늘을 찔렀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