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백제의 마지막 왕은 의자왕이고, 신라와의 황산벌 전투에서 패배한 뒤 의자왕이 잡혀가면서 백제가 멸망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백제는 의자왕이 잡혀간 후에도 부흥운동을 하며, 풍왕을 세우는 등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풍왕은 의자왕의 아들이며, 일찍부터 왜국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백제는 아신왕 6년 이후에 왜국과의 관계를 공고히 하기 위해 왜국에 왕자를 파견했었다. 풍도 그런 이유로 왜에 파견됐을 가능성이 높다.

 

풍왕은 왜국에서 미와산에 들어가 벌을 키우면서 조용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가 태자였는지 아니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의자왕의 첫째나 둘째 아들일 가능성이 크고, 많은 왕자들 중 서열이 높은 왕자였다고 한다. 또한, 풍왕은 왜국에서 백제인들 가운데 대표자로 대접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되었고, 부흥운동을 하던 백제는 어떻게 멸망까지 갔을까?

 

 


 

백제의 마지막 왕 추대되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대왕세종 / 의자왕

 

나당연합군에게 백제가 패하여 의자왕과 많은 사람들이 당나라로 끌려간 후, 백제에는 당나라의 행정기관들이 설치되었다.

 

그러나 백제에서는 왕통을 다시 계승하기 위해 곳곳에서 부흥군이 일어나 당나라군, 신라군과 계속 전쟁을 하였다. 복신과 도침 등은 임존성을 거점으로 하여 당나라군에 맞서 싸웠고, 부흥군은 신라군과 당군을 격퇴하면서 사비성 함락을 눈앞에 둘 정도로 세력을 키웠다.

 

복신과 도침 등은 부흥군의 지도부를 형성하여 세력을 모았고, 백제를 일으키기 위해 새로운 왕의 필요성을 느껴 풍왕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했다.

 

복신은 왜국에 있는 풍왕을 데려오기 위해 왜국에 사신을 보내 군사지원과 풍왕의 귀국을 요청했다. 왜국의 제명천황은 직접 백제 구원군을 모집했으며, 왜국은 제명천황이 죽었음에도 국상을 미루고 백제 구원군을 파견하는데 힘썼다.

 

풍왕은 군사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귀국을 요청한 지 약 1년 후에야 왜국의 천지천황이 보내주는 군사 5천여 명과 함께 귀국하였다. 

 

그가 귀국하자, 복신 등이 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정치를 모두 그에게 맡기며 환영해주었다.

 

 


 

백제 부흥군과 풍왕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대왕세종 / 백제부흥군

 

백제 부흥군은 당나라에게 적극적으로 공격하였고, 점차 백제의 옛 터를 회복시켜가고 있었다. 부흥군의 수는 3만 명이 넘었고, 약 200여 개의 성을 회복할 정도로 강해졌다.

 

당시 당나라는 고구려와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백제의 부흥군을 막기가 버거웠고, 당나라 고종은 철군하거나 신라에게 의지하라는 명을 내리기도 했다.

 

부흥군의 지도자이며, 권력자는 복신과 도침이었다. 도침은 승려 출신으로 당시 부흥군 내에서 가장 힘이 셌으며, 자신을 영동장군, 복신은 상잠장군이라 칭하며 권력에 미치기 시작했다.

 

복신은 백제 왕족 출신이며, 부흥군 내에서 가장 전공이 큰 인물이었다. 그러나 도침이 자신을 앞세우며 방자한 태도를 보이자 도침을 살해하고 부흥군 내의 모든 권력을 잡았다.

 

한편, 부흥백제국의 임금으로 추대된 풍왕은 오랜 시간 동안 왜국에 살았기 때문에 왕이지만 지지 기반이 없었고, 실질적으로는 제사만 주관하는 실권이 없는 왕이었다.

 

심지어 복신은 왜국에 사신을 파견할 때에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보내는 등 외교권을 행사하였다. 

이로 인해 풍왕과 복신은 겉으로 협력하였지만 속으로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불화는 점점 커졌고, 풍왕은 결국 복신의 목을 베고 머리를 소금에 절였다.

 

풍왕이 먼저 복신을 죽이려고 했는지, 복신이 먼저 풍왕을 죽이려고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부흥군의 분열로 인한 멸망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대왕세종 / 백강전투 패배

 

부흥군의 분열은 도침이 살해당했을 때부터 일어나고 있었다. 도침이 피살되면서 이미 백제군은 당나라와 신라군에게 밀리기 시작했고, 최고 장수였던 복신이 죽자 전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라와 당나라는 부흥백제국의 수도인 주류성을 공격했다.

 

풍왕은 왜국에서 보내준 배 1천여 척과 3만 7천명의 지원군, 백제 부흥군을 이끌고 기상을 살피지 않은 상태에서 수로를 통해 당나라 군을 공격했다.

 

하지만 당나라 함대가 좌우로 협공하여 풍왕은 순식간에 대패했고, 많은 사람이 익사했다.

 

 

 

 

백강 전투를 패배하고 백제 부흥군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풍왕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로 피신했고, 주류성은 함락되었으며, 나머지 백제의 성들도 항복했다.

 

이후 백제의 남은 사람들이 사비성에 모여 저항했으나, 수도가 함락되고 왕이 도피한 백제는 멸망했다.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성과를 거두었던 백제는 결국 내부분열로 인해 멸망하게 되었다.

 

초심을 잃고 권력에 사로잡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 결과는 처참했다. 만약, 내부분열이 없었다면 백제는 멸망하지 않았을까? 백제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삼국을 통일한 건 신라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도침, 복신, 풍왕 세 사람으로 인해 역사가 바뀐 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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