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여러 국가의 정인이나 유명인, 성공한 CEO들은 하나같이 '섬기는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놀랍게도 오래전인 17세기에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했던 위인이 있었다. 바로 청나라의 제4대 황제인 '강희제'이다.
강희제는 1661년부터 1722년까지 재위했다. 중국의 황제 중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고, 그의 내치와 외치는 모두 성공적이었다. 그는 상반되는 두 가지 성향을 동시에 추구하였으나 중도를 잃지 않았던 군주이자 훌륭한 인물이었다.
책을 아주 좋아하면서도 사냥을 잘하는 용맹함을 가졌고, 동양 문화뿐만 아니라 수학, 천문학, 라틴어 등의 서양 학문까지 익혔다.
신하들의 사소한 실수를 관대히 넘어가 주었고, 신하들에게 권한을 위임하였으며, 70세가 다되어서도 상소문을 직접 읽어 원칙에 어긋난 일 처리를 철저히 꾸짖으며 바로잡았다.
솔선수범을 한 황제
강희제는 "군주가 모범을 보여야 백성이 군주를 믿고 따를 것이다"라고 하며 '섬기는 리더십'을 통치 철학으로 삼고 실천했다.
그리고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인 '제갈량'이 쓴 후출사표의 한 구절인 '궁국진력, 안거낙업'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궁국진력이란 존경하는 마음으로 몸을 낮추고 온 힘을 다한다는 뜻이며, 안거낙업이란 백성을 편안하게 살게 해주고 즐겁게 일에 종사하게 해준다는 뜻이다. 강희제는 이를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강희제는 유교 지침서를 내리는 등 백성들이 효를 중시하도록 했다.
그는 아버지인 순치제와 어머니 효강장황후가 떠난 후, 자신을 길러준 할머니인 효장태황태후를 효를 다하여 부족함이 없도록 봉양을 했다. 스스로 효를 실천하고, 백성들에게 따르도록 한 것이며,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섬기는 리더십을 실천한 것이다.
소통하며, 근검한 황제
강희제는 황권을 강화하고, 독단적으로 나라를 이끌었다. 그렇기에 독재의 가능성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황권 조절을 하고, 재상 및 대신들과 의논하여 결정하는 정치를 하였다.
그는 실제로 궁핍하게 살고 있던 한족의 대신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정책을 실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청나라를 방문했던 프랑스 예수회의 선교사인 부베는 루이 14세에게 '강희제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군주이나 황제임 그의 생활용품들은 사치스러움과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못해 소박하기 그지없다. 역대 제황들 가운데 전례 없는 일이다.'라고 보고했다.
강희제를 '근검록'을 보면 "모든 비용은 백성들의 피땀으로 얻어진 것이니 주인 된 황제로서 절제하고 절제함은 당연한 것"이라며 백성들을 중심으로 정치를 펼쳤다. 그는 강한 권력을 가졌지만 남용하지 않았고, 대신들 뿐만 아니라 백성들과도 토론을 했다.
초심을 잃지 않은 황제
강희제는 조정이 안정되었을 때에도 "성군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백성에게 보다 도움이 될까" 등의 고민을 끊임없이 했다. 보통 통치기간이 길면 정치를 함에 있어서 안이해진다.
하지만 그는 가장 오래 통치한 황제였음에도 필요 없는 사업을 벌이거나 개인적인 취미를 즐기기 위해 국정을 등한시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은 인물이다.
그는 몸을 아끼지 않고 최선을 다하여 죽기까지 힘쓴다는 말이 자신의 마음가짐이라고 밝혔고, 신하 중 한 명이 그런 마음가짐은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자세이므로 임금이 가질 자세로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그는 조용히 "짐은 하늘을 섬기는 신하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리더는 빛나는 스타가 아니다. 항상 고민해야 하는 고통스럽고, 고독한 자리이다.
강희제는 자신의 나라에서 힘이 없던 한족의 의견도 수용하여 정치했다. 여러 민족이 섞인 나라지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자신만의 철학을 엄격하게 지키며 통치하였다.
한쪽으로 치우쳤다면 편하게 통치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고 고독한 황제의 삶을 살며 백성을 위한 정치를 했다. 또한, 약 60년간 통치했지만 끝까지 자만하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길어야 5년인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자만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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