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임진왜란 1592'는 2016년 9월 3일 ~ 9월 29일까지 KBS 1TV에 방영된 5부작 드라마로, 중국 CCTV와 공동으로 제작했다. 팩츄얼 드라마(Factual Drama) 장르는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하여 임진왜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사실적이고 생생하게 만들었다.

 

이 드라마는 거북선의 전투 장면이나, 이순신 장군의 해상전투 전략을 더욱 세밀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그 당시 이순신 장군의 마음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다.

 

임진왜란 1592 제작진은 '난중일기(亂中日記)', '임진장초(壬辰狀草)', '선조실록(宣祖實錄)', '수조규식(水操規式)', '도요토미 히데요시 명령서와 주인장', '명실록' 등 다양한 사료를 기반으로 하여 임진왜란을 드라마로 탄생시켰다.

 

 


 

[팩츄얼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제1회 - 고난과 역경의 길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조선하면 선조, 임진왜란 하면 선조, 역시 선조가 등장하는데, 선조는 이미 도성을 버리고 피난 간 상황이다. 일본군 제1군과 제2군은 개전한 지 20일 만에 충주, 여주, 양근(현 양평) 등을 거쳐 한양을 점령하여 본거지로 삼았다.

 

왜적장의 반응은 웃는 것도 아니고, 어이없어하는 것조차 어이없었다. 그래도 한 국가인데 이럴 수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일본군은 조선을 얕잡아 봤고,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리고 다음 장면으로는 조선의 한줄기 빛인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등장한다. 왜적의 수군은 조총을 쏘며 빠르게 다가왔고, 도선을 통해 백병전으로 조선 수군을 위협했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도깨비 같은 탈을 쓰고 등장한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갑자기 쳐들어온 왜적의 모습은 조선의 입장에서 매우 무서웠을 것이다. 흉측한 탈에 높은 뿔이 달려 있었고,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로 인해 사기는 바닥을 쳤고, 왜적은 무서운 괴물이라는 소문이 났다.

 

조선 왕이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렇게 말했다. 

 

"말도 안 된다, 전쟁에 졌을 때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이다. 끝까지 싸우다 죽거나 할복하거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이해를 하든 말든 조선의 왕 선조는 아주 끝을 달린 듯하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이순신 장군과 조선의 수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나서 치른 3번의 해전에서 3번을 이겼다. 전쟁에서 이기긴 했으나 피해는 막심했다. 연승을 하면서도 이순신 장군은 웃지 못했다. 귀선(거북선)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은 귀선이 아직 출격하지 못한다는 것에 대해 몹시 힘들어했으며, 귀선 제작에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다.

 

어느 날, 이순신 장군이 귀선 제작에 사용하라며 녹슨 검, 녹슨 부엌칼 등을 보냈다. 이기남은 이것을 어떻게 쓰냐며 갸우뚱하는데, 한 병사가 "찔리면 쇳독 올라 죽겠다"라는 말에 뭔가 깨닫는 듯 표정의 변화가 생겼다.

 

그 당시 조선의 재정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귀선의 갑판을 만드는데 일반 철을 사용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이 대목을 보면 귀선의 갑판에 녹슨 식칼이나 검 등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왜적들은 비무장 상태였던 조선의 백성들을 모두 잔인하게 살해한다. 전공에 눈이 멀었던 왜적들은 머리를 잘라 서로 가지려는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하루빨리 도망간 선조를 잡기 위해 조선을 이 잡듯이 뒤지며 살인과 강간, 약탈을 일삼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조선 백성들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고 있었다.

 

선조에게 버려진 백성들은 전라좌수영으로 몰리기 시작한다.

 

임진왜란 1592에서는 방송 사상 최초로 '귀선 돌격장 이기남'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귀선이 처음 실전에 투입되었던 사천 해전에서 귀선 돌격장 이언량, 이기남 등이 두 척의 거북선을 지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귀선 제작자 나대용,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왕도 도망간 마당에 왜? 장군께서 혼자 짐을 짊어지냐, 지원이나 보급도 없는 싸움이 무슨 의미냐며 싸우지 말라고 충언을 한다.

 

계속되는 나대용의 말에 이순신 장군은 "우리는 왜 싸우는가?"라는 질문을 한다. 이 질문에 이기남, 나대용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순신 장군은 다시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단 한 번도 지지 않는다. 할 수 있겠는가?" 이기남과 나대용은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이순신 장군은 병사와의 대화 도중 큰 실수를 깨닫는다. 병사들은 왜적을 보자 두려웠고, 조총에 맞지 않기 위해 몸을 숙이고 왜적을 보지도 않고 화포를 쏜 것이다.

 

그 포는 당연히 빗나갔고, 재장전을 하는 도중 왜적은 이미 판옥선에 도선을 하고 있었다.

 

거리는 삼백 보(약 300m)

 

이순신 장군은 말했다.

 

"우리가 틀렸다. 재장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첫 번째 화포가 빗나가면 두 번째 화포를 쏠 기회조차 없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팩츄얼 드라마답게 이기남 장군과 병사들이 화포발사 연습을 하는데, 정말 길고 많은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른 드라마와 달리 재장전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으며, 왜적은 재장전을 할 시간 동안 기다려주지 않는다.

 

과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임진왜란은 쉽게 이겨낸 것이 아니다.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이루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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