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마 일화

 

이제마(李濟馬)의 본관은 전주이며, 이성계의 고조(高祖)인 목조(穆祖)의 2남 안원대군(安原大君)의 19대손이다.

 

그는 1837년(헌종 3년) 3월 19일 함경도 함흥군 주동사면 둔지리 사촌에 있는 반룡산(盤龍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사 이반오(李攀五)였고, 어머니는 경주김씨 였다.

 

이제마는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서자(庶子)였다.

 

호는 동무(東武), 자는 무평(懋平) 또는 자명(子明), 초휘(初諱)는 제마(濟馬)라고 했지만 전주이씨 안원대군파 선원속보(璿原續譜)에는 섭운(燮雲), 섭진(燮晉)으로 되어있다.

 

그의 집안은 함흥에서 학식 있는 가문이었다고 한다. 이제마는 어릴 때 큰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워 재능을 보였고, 이능화의 전기에 따르면 10세 무렵 문리를 깨우쳐 독서에 몰두했다고 한다.

 

 

 

이제마

 

하지만 이제마는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49세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급제해 무위장(武衛將)이 되었고, 진해현감(종6품)을 거쳐 함경남도 고원(高原) 군수(종4품)로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직을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보원국(保元局)이라는 한의국을 개설하여 가난한 사람은 무료로 치료해 주고, 그 밖의 사람에게는 작은 사례를 받으면서 환자들을 보살폈다.

 

저서로는 <동의수세보원>, <천유초(闡幽秒)>, <제중신편(濟衆新編)>, <광제설(廣濟說)>, <격치고(格致藁)> 등이 있다.

 

이제마는 사람마다 타고난 체질이 다르므로 같은 병이라도 그 치료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고,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太陽人), 소양인(少陽人), 태음인(太陰人), 소음인(少陰人) 네 가지로 구분했다.

 

이제마가 의학을 연구하게 된 계기는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는 식도 협착증이나 구토증, 손발이 마비되는 신경염 등 질병이 많았다고 한다. 여러 의원을 찾아 치료했으나 차도가 없어 직접 의학을 연구했던 것이다.

 

 


 

이제마 일화, 濟馬

 

 

이제마의 이름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이제마의 아버지인 진사 '이반오'는 어느 날, 향교에서 일을 보고 오다가 친구들을 만나 주막에서 술을 마셨다고 한다. 이반오는 술이 약했고, 술에 취해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었다고 한다.

 

주막에는 늙은 주모가 딸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얼굴이 못생겼고, 사람됨이 변변치 않아 시집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주모는 이반오와 같은 지체 높은 사람에게 딸을 주려고 했다. 그리고 이반오가 묵고 있던 방에 딸을 들여보냈다.

 

 

 

제마(濟馬)

 

시간이 흘러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할아버지 충원공이 이상 꿈을 꾸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탐스러운 망아지 한 마리를 끌고 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망아지는 제주도에서 가져온 용마인데,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귀댁으로 끌고 왔으니 알아서 잘 길러주시오"라고 말하고는 집에 있는 기둥에 망아지를 매 놓고 가버렸다.

 

그렇게 충원공은 꿈이 이상해서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떤 여인이 강보에 갓난아기를 싸안고 와서 진사 이반오님의 아기 오니 받아달라고 간청했다.

 

충원공은 큰 길조라 여겼고, 모자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아이의 이름은 "제주도 말을 얻었다"라고 해서 '제마(濟馬), 이제마'라고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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