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은 축구의 꽃이며, 세계선수권대회이다.

 

꿈과 희망, 스포츠맨십 고귀한 스포츠 행사에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즘 손길이 닿았다. 그 당시 파시즘 이탈리아는 정당성과 정치적 지지기반이 매우 낮았다.

 

그 이유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니토 무솔리니의 정치적 입지도 낮았다.

 

 

무솔리니는 이 모든 것을 해결하기 위해 월드컵을 선택한다.

 

월드컵 개최지 때문에 국제축구연맹 8번이라는 긴 회의를 한다. 1932년 10월 9일 스톡홀름에서 열린 FIFA 총회에서 제2회 월드컵 개최지를 이탈리아로 결정한다.

 

 

 

 

 

이탈리아 유치위원회가 총외에서 모든 개최 비용을 지불.

 

FIFA 관계자와 참가국 선수에게 철도 요금무료, 할인 혜택을 제공.

 

무솔리니의 집요한 개최 공세를 펼친 끝에 개최지'이탈리아'로 선정.

 

때문에 위원들의 투표 없이 결정되었고, 이탈리아 정부는 대회 개최를 위해 쓴 돈만 350만 리라에 이른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우승시키기 위해 월드컵 운영 방식, 심판 매수 등 이곳 저곳에 압력을 넣기 시작한다.

 

 

 

 

 

지난 대회에서 활약한 아르헨티나의 선수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올시'공갈협박을 통해 강제로 이탈리아의 유니폼을 입게한다.

 

또한 자신의 선수단들에게 '우승하지 못하면 모두 사형' 이라는 전보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된 월드컵.. 이탈리아와 경기가 시작된 국가들은 전반전이 시작도 하기전에 두려움에 떨고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탈리아의 중무장한 육군 병력이 상대팀 라커룸에 파견되었다..

 

대놓고 위압감을 심었고, 경기가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압력을 넣었다.. 실력한번 발휘 못하고, 이탈리아를 만난 상대팀은 힘없이 무너졌다..

 

 

 

 

 

체코슬로바키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안타 자보'는 "졌지만 우리 11명은 살았다" 라고 말했다. 당시 월드컵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알 수 있다.

 

 

결국 이탈리아는 월드컵에서 우승했고, 아르헨티나 선수 '루이스 몬티', '엔리케 과이타', '라이문도 올시'에게 무솔리니 본인이 죽을 때까지 이들에게 거액의 연금을 주며 우대를 해줬다고 한다.

 

 

파시즘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월드컵을 편파판정, 공갈협박, 선수 납치 분위기 조성 더럽다는 것은 다 하면서 우승했다. 

 

 

 

 

 

더 기가막힌 일은 '아돌프 히틀러'가 관계가 있었다는 점이다.

 

히틀러, 무솔리니 둘이서 나눠먹기를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근데, 나치 독일이 4강에서 체코슬로바키아에 패배한다. 때문에 결승에 오르지 못했고, 히틀러는 독일 선수들 모두 감옥에 보낸다. 

 

 

무솔리니는 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고, 이탈리아 파시즘 홍보에 대대적으로 활용했다. 나치 독일 또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그대로 따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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