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의를 지킨 박술희, 이익을 우선시 한 왕규 / 누가 살아 남았을까?
고려의 개국공신 박술희(朴述希)는 신라 말기 ~ 고려 초기의 무신으로 본관은 혜성군(면천)이며, 면천 박 씨의 시조이다. 시호는 엄의(嚴毅)이다. 박술희는 어려서부터 체격이 좋았고, 용감했고, 땅강아지, 두꺼비, 개미를 먹어치울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고 한다. 혜성군은 개국 일등 공신인 복지겸의 고향이기도 했고, 해상무역의 요지였다고 한다. 이들은 같은 해상 출신이라 '왕건'이나 훗날 태조 왕건의 왕비 '나주 오 씨'와 친밀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18세에 왕건의 도움으로 궁예의 호위병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박술희는 왕건에게 충성을 다했고, 전쟁터에서는 용감하게 싸웠다고 한다. 훗날 912년 왕건의 장남으로 '무(혜종)'가 탄생했다. 왕건이 고려를 개국하고 왕위에 오른 지 몇 년 안되어 무를 태자..
2021. 9. 1.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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