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태조 왕건'

태조 왕건(王建)은 한반도를 통일한 고려왕조의 창업주이다. 그런 그에게는 전설도 많다. 하지만 사실 미화된 부분도 많고, 왕에게 어울리는 것이라면 모조리 가져다가 붙인 경향도 있다

 

아마도 왕조를 안정시키고, 왕건이 본래 왕이 될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태조 왕건은 877년에 하주 송악군에서 사찬(沙飡) 융(隆)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찬(沙飡) - 신라 17관등(十七官等)의 여덟째 벼슬.

 

 

여기서 왕건의 어머니는 누굴까? 왕건의 어머니는 한 씨(韓氏)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서해 용왕의 딸이라고 한다. 즉, 왕건의 어머니는 신(神)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개개로 왕 씨 일족의 겨드랑이에는 용의 비늘이 돋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의 창업주인 만큼 왕가의 핏줄을 미화하기 위해 생겨난 전설로 여겨진다. 아마도 왕건을 따르는 사람들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 외에도 당나라 제7대 황제 숙종이 왕자 시절에 한반도를 유람하다가 얻은 사생아가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이라는 전설도 있다. 참.. 고심했던 것 같다. 

 

<고려사>에 실려있는 전설도 왕과 관련이 있다. 왕건의 아버지인 왕융이 송악의 남쪽에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당대 도참(圖讖)의 제일인자였던 도선(道詵)이 지나가면서 말했다.

 

"이곳에서 성인이 나시리라"라고 하며, 왕융에게 "내년에 반드시 귀한 아들을 낳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도선은 왕건이 17세가 되던 해에 다시 찾아와 말했다. "너는 장차 왕이 될 운명이다"

 

그리고 왕건에게 병법과 각종 술법 등을 가르쳤다고 전해진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해신' / '장보고'도 최수종ㅋ

왕건이 태어났을 때, 신라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중앙은 진골 귀족들끼리 '족당(族黨)'을 맺어 왕위를 놓고 매번 다툼을 벌였고, 지방은 호족들이 중앙에 바칠 세금을 빼돌리고, 사병을 더욱 강화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지방 호족들은 너도 나도 힘을 길렀고, 특정 세력들은 중앙으로부터 독립해나갔다.

 

특히 장보고(張保皐)는 해로를 장악해 세력을 쌓은 여러 호족들을 하나로 통합해 해상제국을 세웠다. 장보고는 신무왕의 즉위에 군사를 보조했고, 이로 인해 큰 영향을 미쳤다. 때문에 신무왕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군신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자 장보고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준비한다. 그러나 청해진에 들어온 염장에 의해 암살당한다.

 

그 후 장보고를 따르던 호족들이 독자 행동에 나서면서 신라 호족들의 이탈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중, 하나가 바로 왕건의 가문이었다. 무역을 통해 막대한 부를 쌓은 왕건의 가문은 송악 일대를 장악했고, 예성강 일대에서 강화도까지 이르는 지역에 튼튼한 세력 기반을 구축했고, 특히 해군력이 좋았다.

 

이런 왕건 가문과 임진강 일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세력을 떨치던 궁예(弓裔)가 손을 잡아 후삼국 중 가장 강력한 기반을 가지고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왕융은 금성의 태수가 되었고, 왕건은 20살에 송악산 기슭의 발어참성 성주의 직위에 올랐다.

 

 

 

왕이 되려고 별 짓을 다했다

그 후, 왕건은 궁예의 장수가 되어 많은 공을 세웠고, 수군을 이끌어 경상남도까지 공략하여 한반도에 기세를 떨쳤다.

 

<고려사>에 의하면 성인이 된 왕건의 용모를 가리켜 '눈이 부리부리하고, 이마는 넓고 툭 튀어나왔으며, 턱이 살쪘다. 목소리가 우렁찼다"라고 표현했다. 당시로써 임금에게 어울리는 관상을 모두 가져다 붙였다.

 

왕건은 견훤과 수군으로 대결을 펼쳤다. 화공을 써서 후백제 수군을 격파했고, 견훤은 목숨만 구해 도망쳤다. 게다가 반남현을 공격해 견훤의 장수 '수달'과 '능창'을 사로잡았다.

 

왕건이 전쟁터를 누비고 다닐 때, 궁예의 상태가 이상했다. 궁예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지은 국명을 904년에 마진(摩震)으로, 911년에는 태봉(泰封)으로 고쳤다. 수도도 왕건의 본거지인 송악(개경)에서 철원으로 옮겼다.

 

왕건의 입지가 넓어짐에 따라 궁예는 두려웠던 것이다.

 

궁예는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명분을 접고, 스스로 신라 왕실의 후예라고 했다.

 

자신을 '미륵의 화신', '구세주'라고 일컬으며, 힘이 커진 호족과 장수들을 반역죄로 처형했다. 왕건도 여기에 말려들어 죽을 뻔했다.

 

 

 

왕건, 고려 왕조 창업주

918년 궁예를 내쫓고, 왕건은 스스로 고려의 주인이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왕건은 쿠데타에 반대했고, 궁예에게 충성하려 했다고 한다. 홍유 등이 간곡하게 부추기고, 부인 유 씨가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포악한 임금을 없애는 일은 예부터의 일이다"라며 손수 갑옷을 가져와 남편에게 입혀 마지못해 거사했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이성계가 떠오르지 않나?

 

'국새를 마루 위에 놓으니 이성계가 두려워하여 몸을 움직이질 못했다'

 

왕건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 당시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명분도 찾았을 것이고, 미륵에게 뒤지지 않을 참신한 이야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이렇게 많은 전설과 이야기들이다.

 

어찌 됐든 많은 호족들 중, 왕건이 고려의 창업주가 되었다. 만약 장보고가 죽지 않았다면, 다른 세력들과 손을 잡으며 새로운 국가의 창업주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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