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아는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 과연 그분은 실존인물일까?
당나라에 맞서 안시성을 지켜낸 양만춘 장군의 이름조차도 중국에서 왔다는 기록이 있다.
존함이 밝혀지지 않은 비운의 명장 이게 과연 어떻게 된 일일까?
양만춘 장군의 기록은 '삼국사기, 신당서, 구당서' 등 당태종을 격파한 '안시성 성주'라는 기록뿐, 장군의 존함은 기록되어있지 않았다.
또 중국 측, 사서에는 '당태종이 안시성 전투를 앞두고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일으켜 영류왕과 신하들을 모조리 죽이고, 정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안시성 성주는 복종하지 않았다.'라는 자료가 남아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즉 어디에도 그분의 존함은 없고, 안시성 성주로 기록이 되어있다.
'양만춘'이라는 존함은 어디서?
조선 선조 때, '윤근수'의 저서인 <월정만필 月汀漫筆>에 있는 기록에 '양만춘'이라는 존함이 등장한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온 명나라 장수 '구정도'의 말에 의하면 당태종의 <동정기 東征記>와 <당서연의 唐書演義> 등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서책에 안시성 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이라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서책들은 전해지지 않아 사실인지 모른다.
'송준길'의 <동춘당선생별집 同春堂先生別集>에 있는 기록에 안시성 성주의 존함은 '양만춘'이다.
현종과 대화 과정에서 선조 때, 윤근수의 증언을 토대로 현종에게 안시성 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이라고 아뢰었다는 자료가 남아있다.
'이익'의 <성호사설 星湖僿說>에 있는 기록을 보면 "내가 하맹춘의 <여동서록 餘冬序錄>을 상고해 보니, 안시성 장수를 양만춘이라 썼다." 하맹춘은 명나라 때 사람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 熱河日記>에 있는 기록 "안시성주 양만춘이 당나라 황제의 눈을 쏘아 맞히자, 황제가 성 아래에서 군사들을 시위하게 하면서 비단 100필을 하사하여 그가 자신의 임금을 위하여 성을 굳게 지킨 데 대해 상 주었다"라고 한다.
결국, 양만춘의 이름은 중국에서 내려왔다.
<당서연의 唐書演義>는 명나라 시대의 역사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만춘이라는 이름은 소설 속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소설의 안시성 성주 이름을 '구정도'가 '윤근수'에게 전하고, 이것이 시작이 되어 오늘날 까지 안시성 성주의 이름은 양만춘이 되어버렸다.
우리들은 명나라 시대의 역사소설을 그대로 받아들여 지금까지 그분을 그렇게 불렀다.
그 당시 당의 군대는 세계 최강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 세계 최강의 군대가 안시성 앞에서 쩔쩔맸다.
그것도 모자라 50만 명을 동원해 안시성의 성벽보다 높은 토산을 쌓아 성을 공격하려고 했으나, 토산이 무너지면서 고구려군에게 빼앗기고 만다. 진전 없이 싸움이 계속되는 동안 겨울이 되었고, 당태종은 어쩔 수 없이 안시성을 넘지 못하고, 돌아간다.
당시 최강의 군대가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했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 그렇기 때문에 안시성 성주의 기록을 왜곡하거나 훼손시켰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고구려의 후손들이다. 고구려는 우리의 역사이다.
우리는 정확하게 파악하고, 근거와 자료를 찾아 역사를 바로 잡아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고구려의 역사는 더 이상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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