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출처 - SBS 뿌리깊은 나무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세종대왕의 아버지를 이름을 말하면 "뭐?", "거짓말", "미친" 이런 소리들이 많이 나온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세종대왕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태종 이방원은 칼을 잘 뽑는 사나이였다. 하지만 그도 사연이 많은 왕이다. 우리 생각과는 달리 기록을 보면 백성들에게 너그럽고, 인간다운 부분들이 많다.

 

어쨌든 그는 세종대왕의 아버지였다.

 

태종 이방원과 세종 이도가 생각하는 정치는 완전히 달랐다.

 

태종 이방원의 조선은 강력한 왕권, 이에 대항하면 칼을 날리는 무(武)의 정치.

 

세종 이도의 조선은 모두가 조화롭고, 정적이라 해도 끌어안는 문(文)의 정치.

 

 


 

이방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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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년 6월 3일 태종 이방원은 세자 '이제'를 폐한다. 그리고 셋째 아들인 충녕대군을 왕세자로 삼는다.

 

태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태종은 "행동이 지극히 무도하여 종사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대소 신료가 청하였기 때문에" 세자를 폐하였다고 한다.

 

반면 "충녕대군은 천성이 총명하고 민첩할 뿐만 아니라, 자못 학문을 좋아하며, 치체(治體, 정치의 요체)를 알아서 매양 큰일에 헌의(獻議, 윗사람에게 의견을 아룀)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 이러한 이유로 왕세자로 삼는다고 밝혔다.

 

 


 

조건부 양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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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 이방원은 세자 '이도'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앉았다.

 

이도가 장년이 되기 전까지 군사 문제나 국가에 결단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정부와 6조' 그리고 '상왕'이 함께 논의한다는 조건부 양위였다.

 

드라마만 주구장창 봤을 땐, 이방원이 자신을 위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생각했고, 그냥 나쁜 인간으로만 보였으나 많은 기록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래서 아마도 자식 이도를 위해 그런 결정을 했을 거라 생각이 된다.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아 혼란스럽고 위험요소가 많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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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조선 제4대 왕에 즉위한 세종대왕의 나이는 스물둘.

 

갑작스럽게 왕세자로 책봉되고, 왕위를 물려줬기 때문에 준비가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이 된다.

 

집권 초기 대부분 사안에는 "상왕의 뜻이 이러하니", "상왕께 아뢰어보겠소" 이런 말만 했다고 한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왕이었으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에게 매일 묻고, 아버지의 뜻을 많이 반영하는 고개 숙이는 왕이었다. 이러한 일이 반복해야 될 만큼 매우 어려운 입장이었다.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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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아버지 태종 이방원이 상왕으로 있는 한, 자신이 원하는 정치를 펼치지 못했을 것이다. 항상 아버지가 뒤에서 지켜보고, 불안하고, 갑갑한 상황이 이해가 간다.

 

세종대왕은 자신을 최대한 낮추고, 무섭게 공부하며 그 어려운 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태종 이방원의 무(武)의 정치가 없었다면 왕권이 안정되었을까?

 

기록에는 없지만, 옛 고려의 충신들은 조선을 흔들고, 무너뜨리기 위해 많은 시도를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이렇게도 생각을 한다. 태종 이방원의 무(武)의 정치로 자신을 희생했기에 세종대왕의 문(文)의 정치가 가능했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방원의 가장 큰 업적은 이도에게 왕위를 물려줬다는 것이다.

 

그 결과, 백성을 섬긴 왕, 자주, 민본, 실용정신을 실천한 조선의 위대한 왕 세종대왕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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