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1대왕 온조왕, 백제만 건국신화가 없다??

백제 1대왕 온조왕(溫祚王) 그는 백제 시조이며, 이름처럼 따뜻한 왕이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고구려의 동명성왕(주몽)이고, 어머니는 소서노였다.

 

온조왕은 몸이 컸고, 성품이 효성스러웠으며, 말을 잘 타고 활쏘기를 좋아했다고 전해진다. 온조왕은 고구려의 왕자로서 살아가던 중, 동명성왕의 적자, 이복 형인 유리가 부여에서 고구려로 왔다.

 

유리가 후계자가 되자, 형인 '비류'와 함께 남쪽으로 피난 갔다.

 

비류는 미추홀(인천)에 자리 잡았고, 온조는 하남위례성에 수도를 정하고 나라의 이름은 '십제(十濟)'라 했다. 비류가 자리 잡았던 미추홀의 땅은 습했고, 물이 짜서 백성들이 살 수 없었다.

 

비류의 미추홀의 백성들은 위례로 떠나게 되었고, 비류는 자살한다. 온조는 그들을 받아들이고, 나라의 이름을 백제(百濟)라고 하였다.

 

백제라는 이름은 성왕(26대왕)이 '남부여'로 바꿀 때까지 국호로 사용되었다.

 

다른 국가에 비해 백제는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부모님이 神이었던 주몽,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와 김수로, 조선의 단군, 이들에 비해 백제는 너무 평범하다.

 

그냥 이복형이 갑자기 나타나 도망쳐 남쪽에 와서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 끝이다.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주몽'

<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 건국의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데, 바로 비류가 백제를 세웠다는 이야기이다.

 

"백제의 시조는 비류왕이다" 비류의 아버지인 우태(優台)는 해루부의 서손인데, 우태는 연타발의 딸인 소서노(召西奴)와 결혼했다. 우태와 소서노는 두 아들을 낳았는데, 이들이 비류와 온조이다. 그러다가 우태는 죽고, 소서노는 두 아들과 함께 살았다.

 

주몽이 오자 소서노는 두 아들을 데리고 재혼했다. 소서노는 고구려가 세워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공으로 고구려의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주몽의 첫 번째 부인인 예(禮)씨와 아들인 유류(孺留, 유리)가 찾아오면서 불란은 시작되었다. 왕비 자리에 있었던 소서노 역시도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비류는 이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처음에 대왕께서 부여에서의 환란을 피해 도망하여 이곳까지 왔을 때, 우리 어머니가 집안의 재물을 쏟아부어 나라의 창업을 도와 이루었으니, 어머니의 수고로움과 공로가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대왕께서 세상을 뜨시자 국가가 유류에게 돌아가니, 우리들이 공연히 여기 있으면서 군더더기 혹처럼 암울하고 답답하게 지내느니보다는 차라리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땅을 점쳐 따로 나라의 도읍을 세우는 것이 나으리라"

 

 

 

기원전 17년 음력 3월, 족부(族父, 왕의 7촌 종숙) 을음을 우보(군사와 병마를 총괄한 좌보 다음의 최고직)로 임명.

 

기원전 16년 음력 9월, 말갈이 침입했으나 격퇴함.

 

기원전 15년, 낙랑과 동맹을 맺음.

 

기원전 11년, 말갈의 대대적인 공격에 맞섰으나, 10일 만에 식량이 떨어져 후퇴하다가 500명을 잃음.

 

기원전 8년, 동예의 국경에 목책을 세웠으나, 동예가 말갈과 함께 목책을 부수고 십제인 100명을 죽임. 십제는 동예와의 관계를 끊었음.

 

기원전 4년, 도읍을 위례성에서 한성으로 옮김.

 

기원전 1년, 십제가 도읍을 옮기자, 동예가 틈을 노려 위례성을 함락하고 십제인을 모두 죽임. 말갈이 쳐들어왔지만 추장을 생포함. 이후 위례성을 공격한 보복으로 동예를 공격했지만 폭설 때문에 크게 패함.

 

9년 음력 7월, 대두산성을 쌓았음.

 

10년 음력 2월, 아들 '다루'를 태자로 삼아 군정을 맡김.

 

16년 음력 10월, 마한의 옛 장수 '주근'이 우곡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킴. 반란은 1달 동안 지속, 끝내 주근은 자결함.

 

18년, 십제국은 탕정성과 고사부리성을 쌓았고, 원산성과 금현성을 수리함.

 

22년 음력 9월과 11월, 말갈이 술천성, 부현성을 습격해 큰 피해를 입음.

 

28년 음력 2월, 온조왕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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