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단연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국가였다. 정말 위대하고,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하지만 우리는 고구려에 대해 잘 모른다. 잘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삼족오'에 대해 물어보면 사람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모른다는 사람도 있고, 다행히도 드라마를 봐서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심각한 사람들은 "괴물?"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삼족오는 고구려의 상징물이다. 삼족오는 발이 셋 달린 까마귀로 쌍영총, 각저총, 천왕지신총 등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져 있다.

 

그런데, 일본 축구를 보면 선수들의 엠블럼이 삼족오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왜 삼족오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을까?

 

 


 

동아시아 까마귀

 

 

지금은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니, 흉조라니 하지만 우리 고대사에서 까마귀는 신성한 존재였다.

 

삼족오는 특히 고구려 벽화에 많이 등장하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고대 동아시아 지역에서 태양의 신으로 널리 숭배받았다. 삼국유사 기이편을 보면 신라 소지왕 10년 때, 까마귀가 나타나 곧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영험한 존재로 기록되어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을 세웠다는 연오랑세오녀 설화(延烏郞細烏女說話)에도 까마귀(烏)가 등장하는데, 미래를 알려주는 빛의 상징이었다. 조선시대 일부 묘석에도 삼족오가 새겨져 있으며, 일본인들 역시 태양의 후예임을 강조하고, 까마귀와 삼족오를 중시한다.

 

 

 

 

일본에서는 삼족오를 야타가라스(やたがらす), 야타노가라스(やたのからす)라고 한다.

 

일본 고대사서 일본서기에 나오는 전설을 보면 일본 초대 신무(神武) 천황이 규슈에서 야마토(교토·오사카)로 원정 갔을 때, 그를 인도한 것이 '야타가라스', 삼족오였다

 

일본에서도 고구려처럼 고대 고분과 각종 유물에서 삼족오가 등장한다. 천황 즉위식에도 삼족오를 볼 수 있는데, 곤룡포의 왼쪽 어깨에 삼족오 자수가 놓여있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축구협회도 삼족오 엠블럼을 사용하고 있다. 일본축구협회는 1921년 군국주의 시대에 창립을 했고, 천황의 상징인 삼족오를 엠블럼으로 사용한 것으로 나와있다.

 

 


 

우리는 하나??!

 

 

고고인류학적으로 일본의 지배계급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임이 입증이 되었다고 한다.

 

4세기 초 부여족이 멸망한 뒤, 일부가 한반도 가야에 영향을 미치고, 배에 말과 무기를 싣고 왜로 진출했다고 한다.

 

부여 기마족은 369년 왜의 야마토를 정벌하고, 6세기 초까지 왕권을 장악한다. 이후 가야와 백제 고구려의 멸망으로 십여만 명의 전문가 집단이 일본에 유입되어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토기와 칼, 말갑옷, 금관 고분벽화와 같은 유물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한 번씩 보면 유물들이 흡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결국 우리는 하나인가??

 

 


 

우리나라만 까마귀가 흉조?

 

 

한국에서는 까마귀만 울면 지랄한다. 흉조라니, 안 좋은 일이 생긴다니, 어른들이 자주 그런 말씀들을 하신다.

 

원래는 좋은 의미였던 까마귀가 왜 현재 대한민국에서만 흉조가 되어버렸을까?

 

고구려에게 패망해버린 당나라가 삼족오를 폄하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조선시대 유교가 토속 신화적 요소를 탄압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

 

고구려가 천하의 중심임을 선포할 때는 '삼족오'가 우리의 상징물이었지만 고구려에게 짓밟힌 세력들은 '삼족오'가 매우 싫었을 것이다. 때문에 흉조로 전락시켰을 것이고, 지금은 거의 관심도 없는 수준에 이르렀지 않나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고구려 또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임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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