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지 유신, 이와쿠라 사절단

 

1876년 2월 강화부에서 조선과 일본 사이에 불평등 조약이 체결된다.

 

그리고 이후에 맺어진 조약들도 모두 조선에 불리한 조약이 되고 말았다.

 

이미 여러 열강들에게 두들겨 맞고, 병신 취급을 당했음에도 우리 선대들은 변화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래도 그 당시 김옥균, 박영호,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의 급진 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갑신정변을 일으켰었다.

 

긴 말 필요 없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서로 충돌했고, 결국 외세를 자기들 손으로 끌어들였다. 누가 나쁜지 따질 필요도 없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니, 일단 살아야 변화도 할 수 있다느니 하는 잡소리는 집어치워라.

 

오만 핑계, 변명하지 마라. 그들은 노예를 고집하다가 1894년에 이르러 겨우 노예를 폐지했다. 그것도 외세의 힘으로.

 

결국 지들끼리 싸우다가 나라가 박살 났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서구 열강들로 부터 우리와 똑같은 일을 당했다.

 

그런데, 일본은 달랐다. 변화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었고, 미친 짓을 많이 했긴 했으나, 조선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본도 불평등 조약

 

페리 제독과 함대

 

일본도 불평등 조약을 맺었었다. 1853년 일본의 도쿄만에 도착한 페리 제독은 일본을 거의 강제로 개국(開國)시켰다.

 

1858년 일본은 미국과 미·일 수호 통상 조약을 맺었다. 거의 대부분이 일본에게 불리했다. 

 

하지만 일본은 여기에서 좌절하지 않았다.

 

외세로 촉발된 대내외 환난에 막부는 흔들렸다. 그리고 서양의 실력을 배워 그 기술로 자국을 넘보는 서양을 제압하자는 전략을 세웠고, 그것을 개국론으로 무장해 막부 체제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

 

그것이 바로 '메이지 유신'이다.

 

 


 

메이지 유신과 이와쿠라 사절단

 

일본 근대화

 

일본 메이지 정부는 여러 국가를 방문했고,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은 변화를 선택한다.

 

우선 에도막부 때, 협약한 각종 불평등 조약들을 새 정부의 상황에 따라 대처하려고 했다.

 

메이지 정부, 첫 해부터 순차적으로 협상을 검토했다.

 

유신 초기인 1871년, 안정되지도 않았는데도 대규모 정부 사절단인 '이와쿠라 사절단'을 구미로 파견했다.

 

이와쿠라 도모미를 단장으로 오쿠보 도시미치, 기도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 유신의 핵심 세력들이 직접 참가하였다.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가 아는 그 인간이다. 그리고 수행원과 유학생을 포함해 106명으로 구성되었다.

 

이와쿠라 사절단은 미국과 유럽을 둘러보고, 근대화 정책의 방향성을 찾기 위해 약 2년간 순방을 했다. 다시 말하지만 메이지 정부는 안정이 되지 않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서양의 정책을 배우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와쿠라 사절단의 임무는 첫째, 미국과 영국, 유럽 제국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재협상한다. 둘째, 교육 과학기술, 문화, 군사, 사회와 경제구조 정보를 수집하여 일본 근대화를 촉진한다.

 

 


 

혁명적인 사절단

 

이와쿠라 사절단의 유학생

 

이와쿠라 사절단은 어린 남녀 아이들을 동행하여 미국과 유럽 등, 각국에 유학을 시켰다. 그냥 둘러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화에 앞장설 미래의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다. 이 아이들은 훗날 일본 근대화에 많은 기여를 한다.

 

오쿠보 도시미치 작은 아들도 유학에 참여했는데, 후일 내대신 등을 역임했고, 쇼와 천황을 보좌했다.

 

마키노 노부아키는 구미(歐美)와 일본 정부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

 

쓰다 우에코는 근대적 여성 교육의 선구자로서 쓰다주쿠 여자 영어학교를 최초로 세웠다.

 

이렇게 모두가 일본 근대화를 위해 노력했다.

 

 


 

조선, 서양은 나쁜거다.

 

조선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열강들에게 짓밟히고, 또 짓밟혔으나 배우려 하지 않았고, 변하려 하지 않았다. 무조건 서양 배척이었다.

 

그 결과 조선은 식민지를 겪고, 아직도 분단된 국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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