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3대왕 유리 이사금, 치아가 좋아서 왕이 되었다??

유리 이사금(儒理 尼師今, 재위 24년 ~ 57년) 신라 3대왕이다. 노례 이사금(弩禮 尼師今)이라고도 불렸다. 이름이 유리(儒理)이고, 이사금(尼師今)은 신라 초기의 왕호라고 보면 된다.

 

그의 다른 이름은 치리(齒理), 치리적(治理赤) 등이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노례(弩禮)이다.

 

이사금은 신라 3대 유리왕 때부터 18대 실성왕 때까지 사용했다고 한다.

 

유리 이사금의 아버지는 남해 차차웅(南解 次次雄)이고, 어머니는 운제부인(雲帝夫人)이다. 그리고 신라 시조인 박혁거세의 손자이며, 천일창의 동생이다. 천일창은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유리 이사금은 24년 ~ 43년까지는 친정하였고, 43년 ~ 57년 사망할 때까지 매제인 석탈해(탈해 이사금)가 대보(신라 최고 관직)의 신분으로 대리청정을 하였다고 한다.

 

 

 

잇금(齒理), 이사금(尼師今), 임금

유리 이사금은 잇금(齒理)이라고도 하는데, 이빨 자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남해 차차웅이 죽고 유리가 즉위할 순서가 되었을 때, 대보였던 탈해에게 양보했으나 탈해 역시 사양했다. 그래서 떡을 씹어 잇자국을 보고 수가 많은 사람이 즉위하기로 했다. 그 결과 유리가 많았고, 즉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사금이라는 칭호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삼국사기>는 왕호에 대해 김대문의 말을 인용했다. 이사금은 방언이니 잇금을 이른다. 이전에 남해가 바야흐로 죽으려 할 즈음 아들 유리와 사위 탈해에게 일러 말했다. "내가(남해 차차웅) 죽은 뒤 너희 박, 석 두 성씨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이 왕위를 이을 일이다" 이때 탈해는 38세, 유리의 나이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었다. 둘은 지혜가 많은 자는 잇금이 많다고 하니, 그것으로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자는 탈해가 제안했다. 그 결과 유리의 잇자국이 많아 유리가 왕이 되었고, 왕호를 이사금, 잇금이라 하였다.

 

잇금이 이빨 자국이라는 뜻으로 이가 많은 사람이 덕망이 높고 지혜가 많다는 설이 결합되어 왕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인 '임금'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연장자라는 의미도 포함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장자가 치아의 상태가 나빴을 텐데, 왜 그랬을까? 그 당시 먹거리는 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아에 무리가 가는 것들이 많았을 것이다. 또한 위생도 매우 좋지 않았을 것이다.

 

계급으로 따지자면 낮은 사람들은 치아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았을 것이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치아가 좋은 사람들은 높은 계급에 위치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좋은 치아를 유지하면 잘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 당시에 치아의 개수로 왕위 계승자를 결정하자고 했지 않을까?..

 

 

 

유리 이사금(儒理 尼師今)

어찌 되었든 24년에 왕위에 올랐다.

 

25년 유리 이사금(즉위 1년), 시조 묘에 제사를 지내고 죄수를 사면했다.

 

28년 유리 이사금(즉위 5년), 홀아비, 과부, 고아, 늙고 병든 이들에 물품을 주어 구제했다.

 

32년 유리 이사금(즉위 9년), 진한 6부의 이름을 고치고 성씨를 하사했다. 그 촌장들에게 이, 설, 최, 배, 정, 손 등의 성씨를 내렸고, 관제를 정비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관위 17등급을 정리했다고 한다.

 

35년 유리 이사금(즉위 13년), 음력 8월에 낙랑이 북쪽 변경을 침범하여 타산성(朶山城)을 공격하여 함락당했다.

 

37년 유리 이사금(즉위 14년), 고구려의 '대무신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멸망시켰다. 낙랑 사람 5천 명이 신라에 와서 투항했다. 그 사람들은 6부에 나누어 살게 하였다.

 

40년 유리 이사금(즉위 17년), 화려현(華麗縣)과 불내현(不耐縣)의 사람들이 함께 모의하여 기병을 이끌고 북쪽 변경을 침범했다. 맥국(貊國)의 우두머리가 곡하(曲河)의 서쪽에서 군사로 막아 물리쳤다. 유리 이사금은 기뻐하여 맥국(강원도 춘천지역에 있었던 고대의 소국)과 우호 관계를 맺었다.

 

42년 유리 이사금(즉위 19년), 음력 8월에는 맥국의 우두머리가 사냥하여 얻은 새와 짐승을 바쳤다.

 

57년 유리 이사금(즉위 34년) 음력 9월, 유리 이사금은 병환이 들었고 유언 비슷한 말을 남겼다. "탈해는 그 신분이 임금의 친척이고 지위가 재상의 자리에 있으며 여러 번 공명(功名)을 드러내었다. 짐(朕)의 두 아들은 재주가 그에(탈해) 훨씬 미치지 못한다. 내가 죽은 후에 그로 하여금 왕위에 오르게 할 것이니, 나의 유훈을 잊지 말라"

 

57년 음력 10월, 유리 이사금이 죽어 사릉원(蛇陵園) 안에 장사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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