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1대 왕 박혁거세 경주 오릉(慶州 五陵)

경주 오릉(五陵)은 경상북도 경주 남쪽 약 2km 지점, 문천 남안의 송림 속에 있는 능묘이다.

 

1969년 8월 2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72호 '신라 오릉(新羅 五陵)'으로 지정되었다. 2011년 경주 오릉(慶州 五陵)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삼국사기>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 제2대 남해왕, 제3대 유리왕, 제5대 파사왕 등 시날 초기 4명의 박(朴)씨 임금과 혁거세의 왕후였던 '알영' 등 5명의 무덤이라 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시체가 승천한 후, 7일 만에 떨어진 것을 머리, 몸, 양 팔, 다리를 5개소에 매장한 것에서 오릉(五陵)이라고 일컫었다고 한다.

 

*거서간(居西干) - 신라 초기의 왕호(王號), 시조 박혁거세를 거서간이라고 하였음,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거서간 기록에는 "거서간은 진한(辰韓)의 말로 왕을 이름이다"라고 하였고, "혹은 말하기를 존귀한 사람을 부르는 칭호이다"라고도 하였다.

 

 

박혁거세(朴赫居世, BC 69 ~ AD 4, 재위 BC 57 ~ AD 4)는 동해안의 한 바닷가에서 어진 사제 의선의 지도를 받아 성장하여 우리나라 고대왕권국가의 문을 여는 신라를 세웠다. 고구려의 동명왕보다 20년, 백제의 온조왕보다 40년이 앞선 시점이다. 그는 어진 왕이었고, 지혜로웠다.

 

 

 

경주 오릉(慶州 五陵)

<삼국유사>에 따르면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이 백성들의 존경을 받으며 62년 동안 나라를 잘 다스렸다. 그러던 박혁거세는 하늘로 올라갔다가 7일 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시신이 머리, 몸, 양 팔, 양 다리, 부위별로 나뉘어 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 왕후였던 '알영'도 죽음을 맞이한다.

 

서라벌 사람들은 박혁거세 거서간의 시신을 하나로 모아 왕후와 함께 장사를 지내려고 했다.

 

시신을 모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방해를 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었던 사람들은 머리, 몸, 양 팔, 양 다리를 따로 묻게 되었다.

 

그래서 신라 시조 박혁거세 거서간의 무덤은 다섯 개나 되었다고 한다. 오릉(五陵)이라고도 불리지만 뱀의 방해 때문에 5개소로 매장했기 때문에 '사릉(蛇陵)'이라 불리기도 한다.

 

 

 

오릉(五陵) / 숭덕전(崇德殿)

경주 오릉(慶州 五陵) 분묘의 양식은 원형봉토분이다.

 

가장 남쪽에 있는 제1호분은 높이 7.25m 지름 38.8m로 경주 오릉(慶州 五陵) 가운데 가장 높고 규모가 크다.

 

1호분의 동북쪽에 있는 제2호분은 장축을 동서로 한 표주박 모양을 하고 있다. 길이는 6.3m이다.

 

제3호분은 5기의 분묘 가운데 거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원형의 분구로서 높이는 3.75m이다.

 

제4호분은 가장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2.25m이다.

 

제5호분은 가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높이는 2m이다.

 

현재까지 경주 오릉(慶州 五陵)의 발굴조사는 없었다고 한다. 분묘의 구조나 축조시기 등을 알 수 없으나, 분구의 형상을 가지고 돌무지덧널무덤, 굴식돌방무덤, 돌덧널무덤 등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다고 한다.

 

경주 오릉(慶州 五陵)의 남쪽에 있는 숭덕전(崇德殿)은 박혁거세 거서간의 제항을 받드는 제전으로 본래 조선 세조 11년(1429년)에 지었던 것인데,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다고 한다. 현존하는 건물은 선조 33년(1600년)에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숙종 20년(1694년)에 수리하였고, 경종 3년(1723년)에 숭덕전으로 사액되었다.

 

경내에는 박혁거세 거서간의 숭덕전의 내력을 새긴 신도비가 있는데, 영조 35년(1759년)에 세운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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