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 보면 '비담의 난'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선덕여왕이 신라를 다스릴 때, 비담은 반란을 일으켰다. 비담은 명활산성에 진을 쳤고, 이를 막기 위해 김유신은 월성에 진을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월성에 큰 별이 떨어졌고 비담은 이를 이용한다. 비담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별똥별이 떨어진 것은 분명 선덕여왕이 패할 징조라고 말하며, 반란군의 사기를 높였다.
선덕여왕은 이런 비담을 막기 위해 김유신과 대책을 논의했고, 김유신은 뜻밖의 묘안을 냈다. 이 묘안은 성공적이었고, 이로 인해 관군은 기세를 얻어 반란군을 물리쳤다.
비담의 난
비담은 선덕여왕 말기의 진골로 추정되는 귀족으로, 성은 김(金)이다.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그런지 비담에 대한 정보나 업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삼국사기를 보면 화백회의의 '수장좌'이자 신라 최고의 벼슬인 '상대등'까지 오른 것으로 나와있다.
선덕여왕 16년 647년 정월, 비담은 염종 등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다.
반란의 이유는 '여자 군주는 나라를 다스릴 수 없다'는 가치관 때문이었다.
당시 선덕여왕은 병세가 악화되어 후계자를 정해야 했는데, 선덕여왕이 후계자로 진덕여왕을 후계자로 삼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 그들은 이에 대항하였고, 왕위 찬탈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이 외에 비담이 귀족세력의 대표로서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 선덕여왕이 여왕으로서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치적 반란을 일으켰다는 설이 있다.
떨어진 별똥별도 다시 올린 김유신
김유신이 이끄는 관군은 먼저 월성을 장악했다. 그리고 월성을 놓친 비담의 반란군은 명활산성에 진을 치고 대치하였다.
김유신의 관군과 비담의 반란군이 대치하던 중, 월성에 큰 별이 떨어지게 된다.
비담은 이를 보고 "내가 듣기로 별에 떨어진 아래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다고 하니, 이는 아마 여자 임금이 패할 징조일 것이다"라고 말하였고, 반란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선덕여왕은 김유신을 불러 대책을 강구했고, 김유신은 그런 선덕여왕을 안심시켰다.
그리고는 김유신이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연에 불을 붙인 허수아비를 매단 후 하늘에 띄워 높이 올려 보냈다. 별이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그리고는 어젯밤에 떨어진 별이 다시 올라갔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이를 들은 반란군의 사기는 다시 땅에 떨어졌다. 김유신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격해 난을 진압한다.
비담의 난의 최후
삼국사기에 따르면, 비담의 난은 단 10여 일 만에 진압당했다고 한다. 선덕여왕은 난이 진행되는 도중 사망했고, 비담과 염종을 포함한 그의 일족 30명은 진덕여왕 즉위 년(647)에 모두 처형되었다.
그리고 난을 일으킨 비담은 9족이 멸하여지는 큰 벌을 받았다.
삼국시대에는 천체에 관련한 미신을 굉장히 신뢰했던 것 같다. 선덕여왕 당시 신라에서도 일식이나 유성이 떨어지는 등의 천체 현상을 인간 세상의 일을 암시한다고 믿었다. 우리가 잘 아는 경주의 첨성대 또한 선덕여왕 당시 세워졌다고 한다. 그만큼 천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또한, 사람의 믿음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반란군들이 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 믿었을 때는 사기가 올라가서 승기를 잡았지만 별이 올라가서 자신들이 질 거라고 믿었을 때는 사기가 떨어지고 결국 패하게 되는 것이 놀랍다.
결국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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