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2년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의 무력 대결을 준비하고 있던 필리프 4세가 왕권 강화를 위해 삼부회를 열었다. 국가적인 지지를 끌어내기 위함도 있었다.

 

프랑스 삼부회는 3가지 계급으로 구분되며, 성직자, 귀족, 그리고 평민의 대표로 구성된 일종의 의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농촌 대부분이 귀족들을 장악했으므로 평민 대표는 도시 대표였다. 때문에 진짜 농부들은 삼부회에 포함되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삼부회에 도시 대표가 포함된 것은 필리프 4세가 부유한 도시민들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얻기 위해서였다.

 

삼부회는 왕이 전쟁이나 급하게 재정이 필요할 때 종종 소집되었다고 한다. 삼부회는 잉글랜드 의회와 달리 아무런 권한이 없었고, 주로 왕이 정책을 각계각층에 전달하거나 자금을 충당하는 수단으로 쓰였다.

 

 


 

프랑스 삼부회 세 가지 계층

 

 

앙시앙 레짐(프랑스혁명 전 절대 군주 정체) 하의 프랑스는 사회를 세 가지 계층으로 분류했다. 제1신분은 성직자, 제2신분은 귀족, 제3신분은 평민이었다. 왕은 신분을 초월한 존재로 보면 된다.

 

 

제1신분 성직자 - 성직자 전체를 말하며 그 안에서도 고위, 하위로 나뉜다. 고위 성직자는 귀족 출신이고, 하위 성직자는 가문 출신이었다. 루이 16세의 시대에는 모든 프랑스 주교는 귀족이었고, 18세기 이전에는 고위, 하위 구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2신분 귀족과 왕족 - 귀족과 왕족으로 구성되어있다. 전통적으로는 왕실과 시정을 하는 주요 계층인 문관 귀족과 무관 귀족으로 나뉜다. 앙시앙 레짐 하의 제2신분들은 부역을 면제받았고, 대부분의 세금을 면제받았다. 과세 면제는 그들을 나태하게 하고, 현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했다.

 

제3신분 도시민과 농촌민 - 제1신분과 제2신분에 속하지 못한 모든 사람들이라 보면 된다. 제3신분에는 도시민과 농촌민으로 구성되어있다. 여기에는 부르주아지(중산층), 장인과 같은 임금 노동자들이 속해있었다. 다른 신분에 비해 불균형적으로 높은 세금을 강요당했다.

 

 


 

삼부회는 왕을 위한 수단

 

 

삼부회의 기능은 단순히 왕의 결정에 지지를 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교황과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 삼부회를 열었다. 의회를 소집하고, 의제를 결정하는 권한은 모두 국왕에게 속해 있었다.

 

삼부회의 의원들은 심사권, 상신권은 있었지만 의결권은 인정되지 않았다. 있으나 마나한 기관이었다. 때문에 제3신분은 매번 피해를 봤고, 부당했으나 무조건 따라야 했다.

 

 

 

 

이 부당함은 쌓이고 쌓여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백년전쟁이 지속되던 14세기 중반에 파리의 상인장 '에티엔 마르셀'을 중심으로 저항했으나 실패한다.

 

이후 전국적 삼부회보다는 소집과 관리가 용이한 지방 삼부회가 소집된다.

 

그리고 삼부회는 1614년 귀족들의 특권 확장을 위해 열리고, 170년간 단 한 번도 열리지 않는다.

 

1789년 5월 루이 16세에 의해 삼부회는 다시 열린다. 이유는 프랑스 왕실의 심각한 재정위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고, 재정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이때 제3신분 대표들은 계급제 개혁을 시도하려고 했으나 무시되고, 결국 세금만 부담하고 끝이 난다.

 

 

 

 

1789년 6월 17일 미라보, 시에예스 등, 제3신분 대표자들은 국민의회를 소집한다.

 

프랑스 왕실은 혁명적 국민의회를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프랑스 대혁명이 시작된다. 그리고 프랑스 신분제 삼부회는 종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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