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문왕(葛文王) 이란? '왕인 듯 왕이 아닌 왕 같은 왕'이라는 느낌일까? 신라 때, 왕실에서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왕족이나 왕의 근친 귀족에게 추봉 하던 왕명이라 한다.
갈문왕은 책봉이라는 형식을 통해 주어졌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책봉, 죽은 사람에게는 추봉이 있었다. 대체로 신왕 즉위 초년에 행해졌고, 책봉 대상자에게는 갈문왕이라는 고유한 이름이 부여되었다.
신라에서 왕은 아니지만 왕위에 버금가는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특별한 사회적 의의를 인정해 주었다.
'갈문'이라는 표현은 이사금 시대에 불리다가 중국식의 '왕'이라는 호칭이 수용되면서 마립간 시대에는 '갈문왕'이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갈문왕의 부인은 '비(妃)'라 칭해졌다.
*이사금(尼師今) - 신라 초기의 왕호, 제3대 유리왕 ~ 제16대 흘해왕 때까지 사용함.
*마립간(麻立干) - 신라 상대(上代) 왕의 칭호. 이사금에 이어 제17대 내물왕 ~ 제22대 지증왕 4년에 중국식 왕호를 칭할 때까지 사용함.
갈문왕의 호칭은 6부 내부의 정치적 역관계에 따라 정해 지거나, 국왕이 즉위한 뒤 책봉의 형식으로 임명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갈문왕의 존재는 여러 의미에서 골치 아팠다. 신라 대신들은 왕을 견제하기 위해 갈문왕을 많이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원래 갈문왕은 왕과 일정한 관계를 가진 지배세력 내의 중요인물들이 갈문왕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위치를 재확인함으로써 왕권의 지지기반을 확대하고, 왕을 중심으로 한 신라 지배세력 간의 안정을 도모하려고 했다.
갈문왕이 했던 일은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왕의 행차 때나 귀족 회합 때, 혹은 외국 사신의 응대 및 접견 때에 왕을 배종 내지 배석해 상당한 발언권을 가졌을 것이라고 한다.
갈문왕(葛文王) 자격요건
첫째 - 왕의 아버지 ·외할아버지·동생, 왕비의 아버지, 여왕의 남편 등 왕과 일정한 혈연관계를 가진 사람.
둘째 - 박(朴), 석(昔), 김(金)과 같은 신라 최고 성씨 집단의 씨족장, 혹은 그들 성씨 집단의 분화가 촉진되면서 새로운 사회 단위로 부각되던 가계의 장의 지위를 가진 사람들.
'박씨왕 시대'에는 왕비의 아버지, '석씨왕 시대'에는 왕의 외할아버지나 아버지, '김씨왕'이 세습권으로 확립된 이후에는 왕의 동생이 주로 갈문왕이 되었다.
박씨왕 - 갈문왕은 주로 왕비의 아버지였다. 이는 왕권의 지지기반이었던 왕비족에 대한 배려가 구체화된 것이다.
석씨왕 - 가계나 씨족이 달라지는 형제 상속에 의해 왕위 계승이 이루어짐에 따라 왕위에 오르지 못한 왕의 아버지가 갈문왕으로 추봉 되거나 왕의 외할아버지가 갈문왕이 되기도 했다.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 부자 상속에 의한 왕위 계승 방법이 확립되면서 왕위 계승권자의 지위에서 밀려난 왕의 동생들이 주로 갈문왕이 되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조분 이사금의 아버지 골정(骨正), 첨해 이사금의 아버지 세신(世神), 지증 마립간의 아버지 습보(習寶), 진덕여왕의 아버지 국반(國飯) 등이 왕의 생부로서 갈문왕이 봉해졌다.
일지(日知), 허루(許婁), 마제(摩帝), 지소례(支所禮), 내음(奈音), 이칠(伊柒), 복승(福勝) 등은 왕의 장인으로서 갈문왕에 봉해졌다.
알천의 경우 김춘추에게 제위를 양보한 것으로 김춘추가 알천의 조부를 갈문왕에 봉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왕의 숙부가 갈문왕에 봉해진 사례도 있는데, 진평왕의 동생이자 선덕여왕의 삼촌인 백반(伯飯) 갈문왕과 국반(國飯) 갈문왕이 그들이다.
왕의 남편으로 갈문왕이 된 사례로는 선덕여왕의 남편 음갈문왕(飮葛文王)이 있다.
통일 신라 무열왕 이후 왕권이 전제화(왕권 힘이 세짐)되면서 갈문왕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졌고, 폐지되었다. 신라 하대(귀족 권력 부활)에는 갈문왕의 존재가 단 1명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매우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1989년 영일 냉수리신라비의 발견으로 지증왕이 국왕이 되기 전에 갈문왕의 지위에 있었음이 확인되어 이전의 이해에 큰 의문이 제기된 상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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