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를 만든건 난폭한 아버지였다?

아돌프 히틀러는 브라우나우(Braunau)에서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에는 '아디'라고 불렸고, 별명은 '볼프'라고 한다.

 

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는 '알로이스 히틀러'이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권위주의적이며 난폭했다. 일부 학자들은 히틀러의 난폭한 성격과 행동의 원인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폭력에서 찾으려 하기도 한다.

 

히틀러가 훗날, 독일 수상이 되고 나서 비서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의 매일같이 계속되는 매질 속에서 더 이상 울지 않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며 조용히 매질의 횟수를 세어나갔다" 

 

어머니는 '클라라 푈츨'이다. 그녀와 알로이스 히틀러의 관계는 외당숙이었다. 그녀가 16살 때 알로이스의 가정부로 일했으며, 알로이스의 두 번째 부인인 '프란지스카 마첼베르거'가 죽은 후 결혼하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와 클라라 푈출은 알로이스 히틀러에 의해 자주 폭언을 듣고, 폭력을 당했다. 때문에 둘은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히틀러와 아버지

아돌프 히틀러는 초등학교 시절에 비교적 친구들과 잘 어울렸다고 알려져 있는데, 원만하지 못하고 우울한 학생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다.

 

성적도 매우 우수한 학생에 속했다고 한다. 수학과 스페인어를 제외하면 꽤 괜찮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와 마찰로 인해 힘들었고, 특히 진학 문제로 많은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 알로이스 히틀러는 13세 때, 오스트리아 빈에서 구두닦이로 시작해 세관 공무원 과장직까지 올랐다고 한다. 아들인 아돌프 히틀러 역시 자신과 같은 실제적이고 분별 있고, 현실적이며 비종교적이고, 비정치적이며 안정적이고 근면한 시민 공무원이 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아돌프 히틀러는 화가 지망생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 웅장한 건물을 스케치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인문계 학교로 진학해 미술대학에 가고 싶어 했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

히틀러가 알로이스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관세국을 보게 되는데, 그는 사무실 안에 갇혀 인생을 허비할 생각에 몹시 끔찍해졌다고 한다.

 

 

"나는 관리가 될 생각은 없었다. 어떠한 설득이나 진지한 훈계도 나의 이 생각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관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싫었다. 무조건 싫었다. 아버지는 관리로서의 생활을 이야기해주고 직업에 대한 애착이나 기쁨을 눈뜨게 해 주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자유가 없는 인간으로서 항상 사무실에 앉아 있어야 하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가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생활의 내용을 서식용지에 써넣는 일을 강요당해야만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하품이 나올 만큼 싫었다"

히틀러 <나의 투쟁> 관리는 질색이다.

 

 

 

아돌프 히틀러

아돌프 히틀러는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오스트리아 린츠의 실업계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자신의 꿈을 짓밟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반항으로 학업에 매우 불성실해졌다고 한다.

 

그렇게 화가에 대한 미련이 남은 아돌프 히틀러는 린츠의 건물을 스케치하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1903년 1월에는 알로이스가 사망한다. 아돌프 히틀러는 당시 15세였는데, 장예식 내내 펑펑 울 정도로 누구보다 가장 슬퍼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사망하고 학업에 더 소홀해졌고, 학교에서 쫓겨나 스테이르라는 곳에 있는 작은 학교로 전학 간다.

 

히틀러가 16세가 되던 해 병으로 학교를 1년 쉬다가 결국 자퇴한다. 병이 완쾌되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해 길 옆에서 노숙을 한다.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에 의해 깨워 겨우 일어났고, 그때부터 히틀러는 죽을 때까지 금주했다고 한다.

 

1907년 어머니가 유방암으로 고통받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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