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문화통치 - 친일파를 양성해 쉽게 통치해볼까?

일본 제국은 3·1 운동으로 인해 골치가 아팠다. 일제 정부나 조선총독부에서는 기존의 통치 방식이었던 무단통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식민통치가 안정화되지 못하고, 비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 당시에는 일본 제국의 급격한 공업화로 일본 내 식량 부족 문제도 심각했다.

 

일본의 정계에서는 서민 출신이었던 하라 다카시(原敬)가 수상으로 취임하며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시대가 열렸다.

 

그러면서 조선총독부의 새로운 인물이 부임하게 되는데, '사이토 마코토'였다.

 

일제는 기존의 강압적인 통치에서 회유적 통치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 1920년 ~ 1930년 일제의 통치방식을 문화정치, 문화통치라 부른다. 말이 문화통치였지 식민지배에서 이뤄진 정책이기 때문에 본질상 다른 것은 없다.

 

그렇게 조선에서는 단체 활동 및 언론 활동이 허가되기 시작했고, 기초적인 초등 교육과 농업 교육이 확대되었다. 하지만 민립대학 설립 운동을 탄압했고, 민간의 고등교육을 부정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군이 치안을 직접 담당하던 헌병경찰제에서 문관인이 치안을 전담한 보통경찰체제가 도입되었고, 민족운동을 분열시켜 체제 내로 흡수하기 위한 민족분열정책과 조선인 대우 및 지방제도 개선 등 부분적인 개량 정책을 추진했다.

 

또한 일본인과 조선인을 차별 대우하는 각종 악법들은 잔존하였다.

 

그렇게 친일파를 양성하며 좀 더 쉽고 효율적으로 통치하려는 목적이었다. 비용도 좀 줄이고..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대책

 

사이토 마코토

- 핵심적 친일 인물을 골라 그 인물로 하여금 귀족, 양반, 유림, 부호, 교육가, 종교가에 침투하여 계급과 사정을 참작하여 각종 친일단체를 조직하게 한다.

 

- 각종 종교 단체도 중앙 집권화해서 그 최고 지도자에 친일파를 앉히고 고문을 붙여 어용화한다.

 

- 조선 문제 해결의 성공 여부는 친일 인물을 많이 얻는 데에 있으므로 친일 민간인에게 원조 및 편의를 제공하여 수재 교육의 이름 아래 많은 친일 지식인을 긴 안목으로 키운다.

 

- 양반 유생 가운데 직업이 없는 자에게 생활 방도를 주는 대가로 이들은 온갖 선전과 민정 염탐에 이용한다. 조선인 부호 자본가에 대해 일·선 자본가 연계를 추진한다.

 

- 농민들을 통제 조정하기 위해 민간 유지가 이끄는 친일 단체인 교풍회(橋風會), 진흥회(振興會)를 두게 하고, 이들에게 국유람의 일부를 불하해 주고 입회권을 주어 회유, 이용한다.

 

 


 

일제의 유화정책

 

사이토 총독은 조선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몇 가지 유화정책을 추진했다.

 

총독부 산하 소속 관서 직원의 제복을 폐지했는데, 3·1 운동 이후 격렬해진 항일의식과 민심을 회유하고 무마하기 위함이다.

 

원래 초등학교 교사도 옷소매에 금줄이 하나 들어가 있는 제복을 착용하고 칼을 허리에 차고 수업을 했다.

 

그리고 언론, 집회 및 출판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허용한다. 무단통치하에서는 전면 금지되었던 언론, 출판, 집회, 결사는 총독부의 허가주의 방침에 따라 금지되거나 제한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시사신문」 등 한글 신문사의 설립도 허가했다. 정치단체나 사회단체의 설립과 활동도 허가했다.

 

 


 

문화통치 = 민족분열정책

 

친일파

일제는 민족운동에 대해 무력으로 탄압하며, 친일파를 육성했다.

 

조선민족운동에 대한 대책 1920」에는 친일파(親日派)와 배일파(排日派)를 구분했다. 배일파는 탄압하고, 친일파에겐 사정이 허락되는 한 편의와 원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일제는 친일파를 이용해 민족운동의 열기를 약화시키려고 했지만, 친일파에 대한 민중의 증오와 반대투쟁으로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켰다.

 

일제의 생각대로 되지 않자, 사회적 지명도가 있는 민족부르주아지에게 관심을 돌리게 된다.

 

*부르주아지 - 공통적으로 자본가 계급이라 함. 사전적 단어의 뜻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노동자 고용하여 이윤을 얻는 계급이라고 함.

 

 

사이토 曰 "생산컨대 앞으로의 운동은 작년 봄에 일어났던 만세 소요같이 어린아이 장난 같은 것이 아니라, 근저로부터 실력 있는 조직적 운동이 될 것임을 미리 각오해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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