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光復節)은 우리나라가 일본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광복에서 '광'은 '빛'을 의미하는 명사적 표현이 아니라, 부사적인 표현인 영예롭게(光) 되찾음(復)으로 해석한다. 즉, 영예롭게 주권을 되찾았다는 의미로 보면 된다.

 

대한민국에서는 8.15 광복절을 국경일로 법제화함으로 매년 양력 8월 15일에 기념하고 있다.

 

광복절 -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대한 법률>에 따라 국경일로 지정. 

 

국경일(공휴일) 아 쉬는 날이라 좋구나~ 하지 말고,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선대들의 고난과 역경도 잊지 말아야 한다.

 

35년 동안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통치한 기간은 참담했다.

 

나라 빼앗긴 고통과 슬픔은 말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일본제국, 무조건 항복

 

 

1945년 8월 15일 아침, 여운형은 엔도 류사쿠(조선총독부 정무총감)와 교섭을 벌인다.

5개 조항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한다.

 

 

첫째. 전국적으로 정치범과 경제범을 즉시 석방할 것.

둘째. 서울의 3개월분 식량을 확보할 것.

셋째. 치안 유지와 건국 운동을 위한 정치 운동에 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넷째. 학생과 청년을 조직, 훈련하는 데 대하여 간섭하지 말 것.

다섯째. 노동자와 농민을 건국 사업에 동원하는 데 대하여 절대로 간섭하지 말 것.

 

 

 

 

그날 정오,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방송이 라디오로 중계되었다.

 

중대 발표가 있으니 조선인들은 경청하라는 벽보가 나붙었다.

 

하지만 당시 라디오를 가진 조선인들은 많지 않았고, 히로히토의 항복 발표 방송은 잡음이 심했다. 또한 어려운 한자가 섞여있었고, 일본어도 아니고, 일본 '황족어'로 나왔다고 한다.

 

 


 

여운형 반토막난 연설

 

 

광복절이 아닌, 다음날에야 조항 내용대로 형무소에 있었던 정치범과 경제범이 석방되기 시작했다.

 

그때서야 어제 방송이 히로히토의 항복 방송인 줄 알게 되었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해방된 시민들은 여운형의 집에 몰려가 연설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여운형은 휘문중학교 운동장으로 가서 해방을 맞이하는 연설을 했다.

 

 

 

 

"조선 민족의 해방의 날은 왔다"

 

"어제 15일에 '엔도 류사쿠'가 나를 불러가지고, '과거 두 민족이 합하였던 것이 조선에게 잘못됐던가는 다시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날 나누는 때에 서로 좋게 나누는 것이 좋겠다. 오해로 피를 흘리고, 불상사를 일으키지 않도록 민중을 지도하여주기를 바란다"라고 하였다.

 

나는 다섯 가지 조건을 요구하였다.

 

"우리 민족해방의 제일보를 내딛게 되었으니 우리가 지난날의 아프고 쓰리던 것을 이 자리에서 다 잊어버리고, 이 땅에다 합리적, 이상적 낙원을 건설하여야 한다. 이때는 개인적 영웅주의는 단연 없애고, 끝까지 집단적으로 일사불란의 단결로 나아가자! 머지않아 연합군 군대가 입성할 터이며, 그들이 오면 민족의 모양을 그대로 보게 될 터이니 우리들의 태도는 조금도 부끄럼이 없이 하자"

 

"세계 각국은 우리들을 주시할 것이다. 그리고 백기를 든 일본의 심흉을 잘 살피자. 물론 우리는 통쾌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에 대하여 우리들의 아량을 보이자"

 

"세계문화 건설에 백두산 밑에서 자라난 우리 민족의 힘을 바치자. 이미 전문·대학·중학생의 경비대원이 배치되었다. 이제 곧 여러 곳으로부터 훌륭한 지도자가 들어오게 될 터이니 그들이 올 때까지 우리들의 힘은 적으나마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것이 여운형의 반토막난 연설이었다.

 

반토막난 이유는 연설 도중 '소련군'이 서울역에 온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연설 도중 고함을 외쳤다고 한다. 청중의 일각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여운형은 연설을 이어갔으나, 흥분한 군중의 일부가 아우성치며 교문 밖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여운형의 연설은 중단되었다.

 

소련군의 경성 입성 소문은 조선 사람들의 습격을 두려워한 조선총독부 관료들이 전향자들을 동원해 공작을 벌였던 것이었다.

 

 


 

 

우리 선대들은 국내외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으며 일제와 맞서 싸우고,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 결국 나라를 영예롭게 되찾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조국과 후손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우리 민족.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없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조국을 위해 희생하고, 노력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국가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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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특집으로 글 하나를 써보려고 한다. 그 당시 히로히토는 항복연설을 했을까? 항복연설은 어떤 태도로 했으며,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을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가? 대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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