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가끔 신(神)에 미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게임이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에 노골적으로 녹아있는 신(神)을 보면 가끔 오글거리고, 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삼종신기(三種神器), <일본서기>와 <고사기> 기록을 보면 일본의 조상신 가운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라는 태양의 여신이 있다. 이 신이 일본 왕실에 전해준 신물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삼종신기(三種神器)이다.
삼종신기(三種神器)는 야타노 카가미(야타의 거울), 쿠사나기노 츠루기(쿠사나기의 검), 야사카니노 마가타마(야사카니의 굽은 구슬)라는 세 가지의 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삼종신기는 천왕가의 가장 신성한 보물이자, 소유하지 못한 천왕은 정당한 천왕으로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한다. 즉, 왕위의 전통성을 보증하는 물건이었다.
여기서 웃긴 점은 역대 천왕조차도 삼종신기를 직접 보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도대체 누가 봤을까? 사무라이 대장? 총리? 궁금하다. 그 이유는 왕실을 보호하는 신 그 자체로 여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히로히토와 삼종신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야타노 카가미'가 있던 이세신궁이 연합군에 의해 폭격당한다.
히로히토는 다급히 '기도 고이치'를 불러 삼종신기를 어떻게 무사히 보전할 것인지 의견을 물어본다.
'기도 고이치'는 천황의 전쟁 책임을 막기 위해 분투한 내대신(內大臣 나이다이진)으로 유명하다.
기도 고이치 일기(木戶幸一日記)의 기록을 보면 "삼종신기를 수호하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를 완수하지 못하면 황통 2600년의 상징을 잃게 되며, 결국 황실도 국체도 수호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결국, 히로히토는 삼종신기를 자신과 가까운 곳에 옮기고 싶어 했고, 신슈(信州, 마츠시로 대본영)로 옮기면 어떨지 물으며, 조바심을 냈다고 한다. 신슈의 마츠시로 대본영은 태평양 전쟁 말기에 미군 공습을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규모 지하방공호를 말한다.
그는 일본 국민보다는 삼종신기를 지키려고 애썼다.
삼종신기로 인해 며칠을 낭비한 결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머릿속엔 온통 삼종신기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시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어전회의가 열렸다.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를 비롯한 3명이 포츠담 선언의 수락에 찬성했다.
'아나미 고레치카' 육군 대신 등은 '본토결전', 일억옥쇄(모든 일본인이 죽을 때까지 전쟁을 계속)를 주장하며 반대했다.
히로히토는 "나는 '도고 외무대신'의 의견과 같다"라고 선언한다. 종전이 결정됐다.
그리고 종전조서를 작성했다.
초안을 보면 히로히토가 삼종신기에 미쳤다는 느낌을 받는다.
내용은 이렇다.
'짐은 너희 신민의 참되고 성실한 마음을 믿고 의지하며 항상 신기(神器)를 받들어 너희 신민과 함께 할 것이다'
대신들은 미국이 신기가 무엇이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괜한 오해를 살까 두려워했다.
그 당시 미국은 일본 황실의 힘을 어떻게든 빼려고 했으니, 만약 이것을 봤다면 끝까지 추궁해서 삼종신기를 가져가거나 제거했을지도 모르겠다.
히로히토의 머릿속엔 온통 삼종신기 뿐이었다. 본인이 말한 신민은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떻게 보면 신(神)에 미쳐서, 신(神)을 이용해 국민을 전쟁에 도구로 동원하는 그의 더러운 수법이 보였다.
그의 마지막 모습은 치졸했다.
일국의 리더라면 현명한 판단을 하고, 구성원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모든 고난을 돌파하고, 잘못된 일이라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이래서 대물림하는 왕은 썩기 십상이다.
일국의 리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일국의 리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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