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선

일제는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50년간 아시아를 누비며 정복전쟁을 치렀다. 만주, 중국 대륙, 시베리아, 동남아, 태평양군도등, 심지어 미국마저 때려버린다.

 

한반도에는 일본, 러시아, 청나라가 돌아가며 간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온 세계가 떠들썩할 때 조선은 무엇을 했는가? 왕실은 열강들의 눈치를 보며, 분열을 이용해 독립을 유지하려고 했다. 양반들은 나라가 위기에 놓여도 이익을 추구하려고 온갖 수단을 가리지 않았다.

 

조선에게는 딱 한 번의 기회가 있었다. 1895년 시모노세키 강화도조약이 체결된 날로부터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약 10년이었다. 일제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근대국가의 체계 정도는 잡을 수 있었던 시간이다.

 

그 시간은 국가능력 향상보다는 왕실의 위엄을 더 중요시했고, 제 밥그릇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구한말 서양 외교관들 曰

 

구한말

구한말 서양 외교관들에 의하면 고종의 모습은 참담했다.

 

'고종은 병적으로 미신에 빠져 있었다' 무당들이 궁중의 모든 일에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국고(國庫)로 들어가야 할 세금마저 가로챘다. (알렌 주한 미국 공사)

 

'고종은 돈에 관한 한 완전히 무모했다' 자신의 사치와 방종을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황제라는 자가 관직도 팔았다. (힐리에 주한 영국 총영사)

 

'고종은 금광이나 전차 등 열강에게 이권을 줄 때에도 자신에게 돌아올 배상금을 중요시했다' 일제는 이를 이용했는데, 1차 한일의정서에 도장을 찍고 고종이 과거에 향유했던 모든 특전을 거의 허용해주며 안심시켰다. 또한 일본 천황은 선물로 50만 원, 경부선 이익금 일부와 경의선 이익금까지 보장하며 그의 환심을 사려고 주의를 기울였다. (조던 주한 영국 총영사)

 

'고종은 가장 어리석은 인물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유일한 기술이 적대적인 세력을 대립시켜 균형을 유지하며 자신의 안전을 보호하려는 것뿐이었다. 고종은 국제 정세를 정확히 판단하지 못하고, 정치적으로 망상의 세계에 살고 있다. (조던 주한 영국 총영사)

 

'궁중은 여러 파벌들이 권력을 쟁탈하기 위해 싸우는 무대' 수많은 파벌들이 황제에게 각기 다른 진언을 하기 때문에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하기가 불가능하다. 한날은 용암포가 개장, 다음날에는 의주를 열 것, 또 그다음 날에는 모두 열지 않겠다고 한다. (조던 주한 영국 총영사)

 

'아시아에서도 한국은 구제가 불가능한 국가다'고종은 열강 사이의 분열을 이용해 독립을 유지하려는 나약한 거간꾼, 양반 계층은 음모를 통해 사적(私的)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익(私益) 집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치권을 포기하고 대신 일본의 지배를 수용해야 한다. (서울·심양 주재 미국 부영사 및 총영사, 러일전쟁 당시 AP통신 특파원, 윌라드 스트레이트)

 

 


 

구한말 조선의 거리

 

인분으로 가득찬 거리

'오늘 나는 민영익의 집으로 가던 길에 거리를 지날 때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거리,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에 머리, 손발이 절단된 시체 4구를 보았다.

 

기록에 의하면 서울 시내 여러 곳에서 시체더미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고 한다.  그 시체들은 갑신정변에 가담했다가 미처 도망가지 못해 체포되어 처형된 반역자의 시체였다고 한다.

 

이곳에 전시된 4구의 시체는 이 지역에 할당된 시체이며, 이 시체들은 3일간 효시(梟示)되고 있는 것이다. 개의 사육제 인양 개들이 시체더미 위로 올라가서 살점을 뜯어먹고 있었다.

 

효시(梟示) - 참형으로 목을 베어 매달아 군중 앞에 공시하는 것.

<알렌의 일기 - 구한말 격동기 비사>

 

 

 

"더욱 놀란 것은 듣던 것보다 훨씬 더 불결하다는 것이다. 도로는 쓰레기와 인분으로 넘쳐나고, 불결함의 극치인 돼지는 기세가 올라 곁눈질로 사람들을 노려보면서 도로를 활보한다. 악취가 코를 찔러 구토가 나올 지경이다.

<일청전쟁 종군비록(秘錄)>

 

 

 

"서양인들이 볼 때는 도로라고 하기에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웅덩이의 연속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정말 왕도(王道)라고 한다. 비가 조금만 와도 이 길은 진흙으로 가득 찬 강으로 변한다. 다리를 건널 때는 매우 조심해야 되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발목을 한두 개 부러뜨리는 게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양반들은 절제 있고, 합법적으로 강탈한다. 합리적으로 도둑질한 군수는 퇴임할 때 아주 잘했다고, 부하들이 마을의 문 근처에 기념비를 세워준다"

<조선사람 엿보기 -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

 

 


 

구한말 조선은 미신의 나라

 

구한말 무당

한국이 귀신을 위해 매년 250만 달러를 허비한다고 기록했다. 1896년 한국의 수출액이 473만 달러, 수입액은 654만 달러 때의 일이라고 한다.

 

구한말 조선의 사람들은 전염병이 돌면 귀신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외신들이 가져온 카메라를 보고, 검은색 박스 안에 귀신이 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민비도 미신을 너무 믿었다고 한다. 임신했을 때, 48일간 황소 머리와 기타 동물을 희생양으로 제단에 바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윤치호는 민비에 대해 "그 영리하고 이기적인 여인이 미신 섬기는 것의 반만큼이라도 백성을 열심히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영국의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현존하는 한국 정부의 활동 실태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그들이 간신히 생계를 위하여 벌어들이는 모든 것을 간접 또는 직접으로 수탈하며, 실제도 되돌려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명 재산에 대한 아무런 적절한 보호책도 제공하지 않는다.

 

아무런 교육시설도 제공하지 않는다. 도로 건설, 항만 개량도 하지 않는다. 해안에는 등대 조차 없다. 도로의 청소와 위생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없다. 전염병을 예방하거나 방안도 없다. 무역과 산업을 장려하는 노력도 없다.

가장 저속한 미신을 장려하고 있다.

<아웃룩(Outlook) 1905년 10월 7일 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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