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5년(우왕 1년) 고려 조정에서는 원나라의 사신을 맞아들이는 문제로 시끄러웠다. 원나라는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논의하러 오게 된 것이었다.
친원파였던 이인임과 지윤 등은 원나라 사신을 맞아들이자고 하고, 정도전과 권근 등 신진사대부들은 격렬히 반대했다.
이인임은 그들의 의견은 묵살한 채, 사신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이인임은 영접사로 정도전을 임명해 보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거부했다.
정도전은 "사신의 머리를 베든지, 아니면 묶어서 명나라로 보내버리겠다"라고 말했다.
결국 정도전은 정치보복으로 나주 화진현으로 유배되었다.
정도전은 유배지에서 성리학 관련 서적을 연구하며 청년 자제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1377년, 유배지에서 풀려난 정도전은 4년 동안 영주, 안동, 제천, 원주 등을 유랑하며 지냈다.
1382년, 개성 근처 삼각산에 초가집을 짓고 학문과 교육에 힘썼다. 그 초가집이 바로 '삼봉재(三峯齋)'이다.
삼봉재에 많은 사람이 몰렸으나, 재상이 된 자가 정도전을 미워해 헐어버렸다. 그래서 부평으로 이사 갔다. 그런데 왕모라는 재상이 그곳에 별장을 짓겠다고, 정도전의 서재를 또 헐어버렸다.
집 없는 서러움을 느끼며 경기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다.
정도전은 시골에 사는 백성들처럼 스스로 밭갈이도 했고, 가난과 기근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다. 권문세족의 횡포, 사원 경제(寺院經濟)의 팽창으로 국가경영의 존폐위기 상황을 직면하며 분노를 느꼈다.
그렇게 정도전은 많은 백성들과 함께 아픔을 겪으며 민본의 꿈을 키워갔다.
정도전 이성계를 위해 시 한수를 지었다
1383년 가을, 정도전은 함길도 함흥에 있는 동북면도지휘사(都指揮使) 이성계를 찾아간다.
그 당시 이성계는 왜구와 여진족을 토벌하며 고려의 새로운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이성계의 군대를 본 정도전은 막혀있던 생각이 뚫리는 듯했다. 그는 고려는 이미 답이 없다고 생각했고, 오직 혁명밖에 없다고 스스로 결론지었다.
혁명에는 이성계의 군사력이 절실했다.
정도전은 이성계 휘하의 정예 군대와 일사불란한 지휘통솔에 감탄했다.
이성계는 정도전의 심오한 학문, 국가경영에 대한 경술에 감탄했다.
정도전은 훌륭하다고 칭찬하며 넌지시 떠보았다.
"이 정도의 군대라면 무슨 일인들 성공시키지 못하겠습니까?"
이성계는 무슨 뜻이냐, 모르겠다는 듯 반문했다고 한다. 이에 정도전은 동남방의 왜구를 소탕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날 밤, 정도전과 이성계는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정도전은 군영 앞에 있는 오래된 소나무의 껍질을 벗겼다. 그리고 그 위에 이성계를 위해 시 한수를 지었다.
蒼茫歲月一株松 / 아득한 세월 속에 한 그루 소나무
生長靑山幾萬重 / 청산에서 자람은 어찌 만 배나 중하지 않으랴만.
好在他年相見否 / 좋았던 시절에 서로 만나지 못하였으니
人間俯仰便陳蹤 / 세상을 굽어보고 우러러보아도 묵은 흔적뿐이구나.
ㅡ 정도전 <제함영송수 題咸營松樹>
정도전은 이성계를 늙은 소나무에 비유했다. 앞으로 때가 되면 자신과 손을 잡고 고려를 뒤집으리라는 자신의 속마음을 은근히 시에 드러냈다.
어떻게 보면 큰 소나무는 정도전 자신이기도 하다. 오랜 세월을 버텨낸 소나무와 정도전은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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