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는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고, 독재자로 악명이 매우 높은 인물이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웠던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런 히틀러에게 어린 시절 꿈이 있었다. 그 꿈은 화가였다. 그는 그림 그리기를 매우 좋아했고, 재능도 가지고 있었다.

 

나치 히틀러가 만약 화가가 되었다면 세계는 어떻게 변했을까?

 

 


 

미술학교, 두 번 낙방

 

히틀러 그림 - 비엔나 오페라 하우스

 

히틀러는 어릴 적 공부는 별로 못했으나, 그림은 잘 그렸다고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히틀러의 이미지와는 너무 다르지만, 그는 그림을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히틀러의 아버지는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화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히틀러는 '빈 콩쿠르' 미술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강압에 의해 린츠 실업계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그는 많이 절망했고, 힘들어했다.

 

히틀러의 아버지는 술을 엄청 마셨고, 엄청 무례했다고 한다. 화가 나면 손찌검도 마다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예술가 기질을 못마땅하게 여겨 자주 폭행하기도 했다.

 

그의 난폭한 성격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된다. 

 

이런 아버지와 불화로 히틀러는 학업에 매우 불성실했다.

 

하지만 그림은 계속 그렸고, 당시 웅장한 건물들을 스케치하며 꿈을 계속 키워갔다.

 

 

 

알로이스 히틀러 / 클라라 히틀러

 

1903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히틀러는 어머니의 지원을 받아 독립하게 된다.

 

독립 이후, 그는 비엔나로 거처로 옮기고, 비엔나 예술대의 일반 미술학교에 진학을 꿈꾸게 된다.

 

히틀러는 112명의 경쟁자들과 함께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떨어졌다. 이유는 평범한 실력이었다.

 

대학에 떨어지고, 자신의 편을 들어주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고아가 되었고, 고아들을 위한 보조금 정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히틀러가 19세에 다시 한번 미술대학 진학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주해 빈의 미술학교에 입학을 지원했다.

 

결과는 떨어졌다.

 

그의 그림들을 본 교수는 "그림보다 건축에 더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건축가가 돼라"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히틀러는 계속 진학에 실패하고, 고아 연금마저 바닥이 난다.

 

그는 엽서에 담긴 그림을 그대로 옮겨 그려 상인에게 되팔며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었다. 그는 그 당시 집도 없었고, 복지시설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럼에도 그림은 꾸준히 그렸고, 꿈을 꾸었다.

 

이렇게 히틀러가 남긴 그림이 2000장 이상으로 추정되지만 대부분 사라졌다. 남아있는 그림은 독일, 영국, 미국 등지로 흩어져 개인들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히틀러는 뮌헨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오스트리아 수사관들이 들이닥쳤고, 이유는 군 징집을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동안 몸이 허약하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에서 군 복무를 회피하고 있었는데, 사실 오스트리아를 못 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유대인과 슬라브족이 섞여있었다는 이유로 오스트리아 군에서는 군 복무를 하고 싶지 않아 했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를 벗어나 순수 독일인들로 구성된 독일의 뮌헨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오스트리아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지만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히틀러는 바이에른 15 보병연대에 입대를 지원했다.

 

이후 정치인으로 데뷔하고, 나치당에 입당하게 된다.

 

그의 미술은 거기서 사라졌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나치의 역사를 만든다.

 

 


 

히틀러가 그린 작품

 

 

<아돌프 히틀러의 자화상>, <성모 마리아와 유년 시절의 예수>, <바다의 야상곡> 히틀러의 작품 중 한 점이 한화로 약 10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히틀러의 그림은 화가로서 상당한 경지에 오른 작품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작품성보다는 독재자가 그린 그림이라는 쪽으로 관심이 쏠렸다. 유대인들은 히틀러가 그린 그림들을 나치의 잔재로 여겼고, 그가 그린 그림을 경매에 올리지 못하도록 법을 제정하려고 했다.

 

또, 히틀러가 남긴 작품들을 모두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2년 1월 28일, 아돌프 히틀러가 그린 '바다의 야상곡'은 슬로바키아에서 온라인 경매에 올라왔었다. 그 그림은 한화로 약 4천7백만 원에 낙찰되었고, 최초 경매가의 1천6백만 원의 3배에 달했다.

 

만약 히틀러가 미술대학에 진학해 화가로서 살았다면 유명한 화가가 탄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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