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그 당시 우리 모두는 축구경기를 보며 뜨거운 열기로 응원을 하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 부근 해상에서는 총알과 포탄이 날아다니며 동료가 쓰러지며, 죽어가고 있었다.

 

2002년 6월 29일 오전 9시 54분 대한민국과 터키가 3·4위전을 앞둔 그 날, 북한 경비정 중형 1척, 대형 1척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대한민국 해군은 참수리 357, 358호 고속정 2대를 출동해 대응했다.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향해 경고 방송을 한다. "귀함은 우리 북방한계선 NLL를 침범했으니 지금 즉시 북상해 주길 바란다"

 

차단기동을 하던 참수리 357가 기습공격을 받는다.

 

북한 등산곶 684가 기습으로 함포를 발사했고, 참수리 357의 함교와 조타실이 파괴된다.

 

윤영하 정장은 중상을 입고, 조금 뒤 전사했다.

 

이희완 부정장이 그 뒤를 이어 지휘를 했으나, 그도 이미 총상으로 한쪽 종아리 근육을 잃은 상태였다.

 

함교와 조타실이 파괴되어 전투지휘가 어려운 상황에도 그들은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공격했다.

 

 

 

 

어둠과 화염 속, 피비린내 나는 공포 속에 전투는 30여 분간 지속되었다.

 

화기자동장치도 파손되어 수동으로 전환해 공격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6명이 전사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박동혁 병장은 중상자였으나, 후송 후 전사했다.

 

그들과 함께 바다를 지킨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도 예인 도중 침몰하였다.

 

북한 측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약 30여 명 사상자와 S0-1급 초계급 등산곶 684호 반파 & 파괴되었다고 한다.

 

 


 

'차단기동'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당시 대한민국 해군 교전수칙은 '경고방송 → 차단기동 → 경고사격 → 격파사격'

 

이 교전수칙은 김대중 대통령이 4대 교전수칙을 지시하여 해군이 '밀어내기'로 불리는 차단기동 개념을 도입했다.

 

4대 교전수칙 - 첫째 북방한계선(NLL))을 지켜라, 둘째 선제공격 금지, 셋째 상대가 먼저 발사하면 교전수칙에 따라 격퇴하라, 넷째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 것.

 

정말 할 말이 없다. 그 당시 해군함정은 한 대 맞아야 공격할 수 있었다. 해전에서는 한 발에 따라 함정이 격침될 수도 있는데, 이런 쓰레기 같은 교전수칙이 있나.. 정치인 니들이 함정타고 전쟁 가라.

 

선제공격은 정치인이 판단할 것이 아니라, 전투지휘관이 판단할 일이다.

 

하지만..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는 교전수칙에 따라 경고방송을 하고, 차단기동으로 대응했다.

 

차단기동을 실시해 북한 등산곶 684호의 450m, 150m 근접한 거리까지 접근했다.

 

더 웃긴 것은 초계함이 13km 밖에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전투대형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

 

위험한 수역에서는 앞쪽에 고속정이 기동 하고, 뒤에서는 초계함이 호위해야 하는데, 주요 작전의 직위자들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조선시대 해군도 이렇게 하진 않았다.

 

차단기동은 6노트라는 미친 속도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6노트라는 미친 속도로, 6노트는 약 11.112km/h이다.

 

호위도 없이 적에게 기어가게 시킨 것이다. 죽으란 것이다.

 

이후 차단기동은 교전수칙에서 삭제되었다.

 

 


 

북한군 도발 정보, 묵살

 

한철용 5679 부대 前 부대장

 

그 당시 5679부대가 어렵게 수집한 '북한군 도발' 정보가 있었다고 한다.

 

도발 정보를 국방부 수뇌부에 보고했으나, 묵살하고 예하부대에 하달하지 않았다. 그것도 두 차례나.

 

북한이 도발할 것이라는 정보를 전혀 몰랐던 그들은 평상시와 같이 교전수칙대로 '차단기동'을 실시했다.

 

도발 정보를 묵살하더라도, 대비라도 했더라면 예방은 하지 않았을까? 

 

왜? 도발 정보를 묵살했을까, 왜? 그들을 그렇게 보냈나?

 

그 당시 정보 부서에서 북한군의 민감한 군사동향을 보고하면 이를 격려해야 할 지휘관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런 거 말고 뭐 좀 좋은 거 없느냐'라고 반문했다고 한다.

 

즉, 청와대에 보고할 만한, 햇볕정책 추진의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북한 정보가 없냐는 뜻이었다. 예를 들어 북한군의 훈련 축소 등에 관한 정보가 여기에 속했다고 한다. (한철용 5679 부대 前 부대장 曰)

 

군인이 정치인들이 두려워 동료를 팔아먹었다.

 

군인이 자신을 위해 동료를 팔아먹었다.

 

 


 

월드컵은 가자, 영결식은 글쎄..

 

 

제2 연평해전 전사자 영결식에 전두환 前 대통령은 참석했다. 하지만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 이한동 국무총리, 김동신 국방부장관, 이남신 합참의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뭐 대통령은 의전에 따라 영결식에 참석하는게 아니라던데 그건 그렇고, 국방부장관이랑 합참의장은 왜?

 

그리고 김대중 前 대통령이 발간한 '김대중 자서전'에 따르면 북한에서 보낸 통지문 때문에 제2 연평해전을 '우발적 도발'로 보고, 일본행을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한다.

 

김대중 前 대통령이 공개한 북한의 통지문 내용은 "이 사건(제2 연평해전)은 계획적이거나 고의성을 띤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랫사람들끼리 우발적으로 발생시킨 사고였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자"

 

그 당시 정부는 이 통지문을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제2 연평해전으로 쓰러진 우리 대한민국의 군인의 피보다 북한의 설명을 더 믿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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