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4대왕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

탈해 이사금(脫解尼師今, 재위 57년 ~ 80년)은 신라의 4대왕이다. 성은 석(昔), 휘는 탈해(脫解)이다.

 

아버지는 함달파왕(含達婆王)이다. 그는 다파나국(多婆那國)의 왕, 용성국(龍城國)의 함달파왕(含達婆王), 혹은 완하국(琓夏國)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삼국유사>의 '석탈해 설화'에 의하면 신라 해변가에 표착한 상자 속에서 나온 석탈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아버지는 함달파가 적녀국(積女國)의 왕녀를 맞아 왕비로 삼아 오랫동안 기도하여 나를 낳았다"라고 한다. 함달파는 왜(倭)의 동북쪽 1,000리에 있는 용성국의 왕이라고 하였다.

 

어머니는 적녀국 공주(本質國 公主)라고 한다.

 

탈해 이사금은 신라 본토 사람이 아니었다. 일본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용성국에서(龍城國) 배를 타고 신라로 이주해 영특한 두뇌와 쇠를 잘 다루어 왕의 자리에 까지 올랐다.

 

그 당시 쇠를 잘 다룬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었다.

 

 

 

쇠를 잘 다루었던 탈해왕은 사기꾼??

신라 2대왕 '남해 차차웅'때 가야국 해안에 배가 한 척 보이기 시작했다. 가야를 세운 '김수로왕'은 나라에 큰 복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며 백성들과 함께 해안가로 나갔다. 북을 두드리며 배를 맞이 했는데, 배는 가야 해안에 멈추는 듯하다가 도망가듯 가버렸다.

 

그 배는 시날 땅인 아진포 앞바다에 멈춰 섰다. 아진포에는 '아진의선'이라는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배에는 까치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아진의선은 기이하게 여겨 배로 올라가 봤다. 배 안에는 큰 나무 상자가 있었다. 아진의선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으나 뭐가 나올지 모를 두려움에 열지 않았다.

 

할머니는 많은 고민 끝에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상자 안에는 남자가 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금은보화 속에 앉아있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디서 온 사람이냐 물었으나 석탈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7일 후 석탈해는 말했다.

 

"나는 용성국의 왕자요. 우리 아버지가 오래도록 아들이 없어 자식 얻기를 간절히 바라더니 어머니가 임신 7년 만에 큰 알을 하나 낳았소. 깜짝 놀라 신하들을 모아 놓고 물으니,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했소. 그러자 아버지는 상자에 나를 넣어 바다에 버렸소. 사람들이 축원하기를 부디 인연이 있는 땅에 가서 나라를 세우고 집을 이루러 살라 하며, 붉은 용이 배를 보호하여 여기까지 왔소"

 

그리고 남자는 경주의 명산 '토함산'에 올라가 자신이 살아갈 땅을 찾기 시작했다.

 

 

 

석탈해(昔脫解), 탈해왕(脫解王)

토함산 정상에서 땅을 살피던 중, 초승달처럼 생긴 땅이 보였다. 그는 그곳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신라의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생각을 했고, 밤중에 호공의 집 주위에 숫돌과 숯을 몰래 묻었다.

 

다음날 호공을 찾아가 "이 땅은 내 조상들이 살았던 땅이오"라고 우겼다. 호공은 어이가 없어 관청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관청에서 나온 관리가 "무슨 이유로 여기가 너희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우기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이 땅은 내 조상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살던 곳으로, 우리 집안은 대대로 대장장이였으니, 집 주변을 파 보면 그 증거물이 분명히 나올 것이오"라고 말했다.

 

땅을 파보니, 그가 묻어 두었던 숯돌과 숯들이 나왔다. 관리는 호공에게 집을 양보하라고 했다. 호공은 그의 계략에 넘어가 집을 빼앗겼다.

 

그의 성이 석(昔)이 된 이유가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호공의 집을 머리를 굴려 빼앗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석탈해가 타고 온 배를 까치들이 호위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까치 작(鵲)' 자에서 '새 조(鳥)'를 떼 버리고, 석(昔) 자를 성으로 삼았다고 한다.

'탈해'라는 이름은 상자를 열 때, 알을 깨고 나왔다고 하여 '벗을 탈(脫)', '열 해(解)' 자를 썼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MBC 드라마 '김수로'

신라 2대왕 남해 차차웅은 호공이 집을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석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이라 판단해 자신의 첫째 딸을 석탈해에게 시집보냈다고 한다.

 

남해 차차웅이 죽고, 다음 임금 자리를 놓고 남해 차차웅의 아들인 유리와 사위인 석탈해가 거론되고 있었다. 둘은 서로 양보했고, 떡을 베어 물어 이가 많은 사람이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유리 이사금'이다.

 

유리 이사금은 유언을 남겼다. "내 아버지가 죽으면서 말씀하시를 '나 죽은 뒤에 아들 사위를 막론하고 나이 많고 어진 자로 내 뒤를 잇게 하라'라고 하셨소. 이런 연유로 나이 많은 내가 먼저 했으니, 이제는 마땅히 왕의 자리를 탈해에게 물려줄 때요. 탈해는 내 동서로 나라를 위하여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웠소. 또한 두 아들의 자질이 탈해에 비해 너무도 떨어지니, 내가 죽거든 탈해를 왕으로 섬기시오"라고 했다.

 

유리 이사금이 죽고, 신하들은 유언에 따라 석탈해를 임금으로 추대했다. 이때 석탈해의 나이는 6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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