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삼권분립을 최초로 주장했던 몽테스키외의 본명은 '샤를 루이 세콩다 드 라 브레드 에 드 몽테스키외'이다. 그는 프랑스의 정치사상가로 1689년 1월 18일에 태어나 1755년 2월 10일에 사망했다.

 

그는 1748년에 당시 정치사상에 큰 영향을 미친 법의 정신이라는 책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서 최초로 국가권력을 입법권, 사법권, 행정권으로 나누는 삼권분립설과 입헌 군주 제도론이 나왔다.

 

그의 삼권분립론은 세계 여러 국가의 헌법에 규정되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되었고, 미국의 독립 및 프랑스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우리나라 또한 헌법에서 삼권분립을 규정하고 있다. 

 

 


 

귀족 가문 출신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라 브레드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르도 지방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이며, 그의 아버지는 왕실 친위대의 무관 귀족이었으며, 그의 어머니는 영국 가문의 후예였다. 안타깝게도 그의 어머니는 그가 11살에 사망하였다.

 

몽테스키외는 어머니가 사망한 후 오라토리오 수도회가 운영하던 쥬이의 학교로 가 1711년까지 문학과 고전 교육을 받았으며, 25세에 친삼촌으로부터 남작이라는 칭호와 권리를 물려받고 보르도 고등법원의 평의원이 되었다.

 

1715년 쟌느 라르티그와 결혼하여 세 자녀를 두었다.

 

 


 

학문에 몰두하는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9년 만에 고등법원장직을 사임하고 평생 학문에 전념하게 되는데, 갑자기 이러한 선택을 한 이유는 알 수없다고 한다. 후에 그는 '학문 연구야말로 인생의 온갖 번뇌에 대한 나의 최선의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평생에 한 시간의 독서로 쫓아버릴 수 없는 걱정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그는 1716년에 보르도 아카데미에 들어가 1719년에 지구의 자연사 프로젝트, 1720년에 물체의 중력의 원인에 관한 논고 및 물체의 투명성의 원인에 관한 논고 등을 작성했다.

 

 

 

 

그러던 중 1721년, 이전과는 다른 방향인 페르시아인의 편지라는 소설을 익명으로 출간하였다. 이 소설은 발간되자마자 큰 문학적 성공을 거두었고, 몽테스키외는 이 소설의 형식으로 프랑스의 계몽사상 특유의 정치 문화를 비평하기 시작했다.

 

그는 1710년~1720년의 파리 생활방식을 풍자하며 절대 군주 정체, 삼부 회의, 대학 등을 희화화하였고, 심지어 가톨릭의 교리 및 관행과 교황부터 수도승까지의 사제 집단에 대해 조롱을 하였다.

 

1734년 몽테스키외는 2년간의 연구 끝에 그의 대표적인 서적 중 하나인 로마인의 위대함과 쇠락 원인에 관한 고찰을 출간한다.

 

이후 10여 년에 이르는 연구를 거쳐 1748년이 되어서야 법의 정신을 출간하였다. 법의 정신은 종교적 권위를 비판하여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금서로 지정되었다. 그는 이에 항의하여 1750년에 법의 정신에 대한 변론이라는 책을 출판하였다.

 

 


 

 

몽테스키외는 만약 삼권분립 제도가 확립되지 않는다면 반드시 독재가 일어나고 자유가 말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귀족으로 태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일생을 아무런 문제 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면서까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희생했다.

 

어떤 일이나 사회가 잘못되고 있다면 그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변화시키려고 시도하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그 일이 내가 가진 특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시대를 뒤엎은 사상도 놀랍지만 그의 용기와 희생정신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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