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의 무장이자 센코쿠 다이묘이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함께 '향토삼영걸'로 불린다.
*센코쿠 시대 - 일본 15세기 중반 ~ 16세기 후반까지 사회적, 정치적 변동이 계속된 내란의 시기, 일본 전국시대라고도 한다.
*에도 시대 -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운 에도 막부가 일본을 통치한 시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오다 가문에 이어 이마가와 가문에서 인질생활을 했으며, 성인이 된 후에는 이마가와 가문의 가신으로 활동을 했었다. 가주인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독립하게 된다. 이후 오다 노부가나의 세력 안에 들어가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갔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전국시대를 종식시켰을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머리를 숙였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킬 때, 조용히 세력을 넓혔고 그가 사망한 후 세키가하라 전투를 통해 전국의 패권을 쥐고, 그 기반으로 에도 막부를 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끝없이 참고 끝없이 기다리며, 인내의 한계를 견디며 자신의 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의 인내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그가 단 한 번이라도 인내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세상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인내의 한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생애 중반까지 많은 굴욕을 당했다.
다케다 신겐과의 전투에서 바지에 똥쌈,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바지에 똥을 싼 일을 부하들에게 시켜서 그 모습을 초상화로 남겼고, 심지어 석상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성상을 매일같이 보면서 반성하며 다시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맞붙어 이겼으나 명분이 없어 그의 휘하로 들어가는 굴욕을 당하며, 그의 여동생이었던 '아사히히메'와 강제로 결혼하게 된다. 그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회유하기 위해 아사히히메를 강제로 이혼시켰다고 한다. 즉, 유부녀에다가 40살이 넘었던 아사히히메와 결혼했던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영지를 강제로 옮겨버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향력을 깨버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사람을 남겨놓았고, 새 영지에서 자신을 알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계략과는 달리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출전 명령을 받았으나, 풍토병과 황무지 개간 및 지배 지역의 치안 문제 등, 갖은 변명을 하며 불참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군사를 온전하게 보전하게 된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인내의 한계를 여러 번 경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매우 침착했으며 흔들리거나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문제점을 새기고, 연구하여 다시는 하지 않게끔 노력했다.
이러한 행동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더욱 냉정한 판단력으로 무장하게 되었고, 결국 많은 다이묘들에게 지지를 받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한다.
인내의 한계를 버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결국 일본의 지배자로 탄생하며 '에도 막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무조건 인내를 한다고 큰 인물이 되는 건 아니지만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인내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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