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센고쿠 시대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활약했던 무장이자 정치가이며 다이묘이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함께 삼영걸로 불린다.

 

*센코쿠 시대 - 일본 15세기 중반 ~ 16세기 후반까지 사회적, 정치적 변동이 계속된 내란의 시기, 일본 전국시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장악한 시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58년 '오다 노부나가'를 주군으로 모시며, 전공을 거듭 세워 중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582년 아케치 미쓰히데가 반란을 일으키는데, 이 사건을 '혼노지의 변'이라고 한다.

 

이 반란으로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가 죽자 주고쿠를 침공 중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곧바로 군대를 돌려 배신자 미쓰히데를 죽였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일을 계기로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그는 노부나가의 아들들을 제거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각 지역의 다이묘들을 굴복시켜 일본 국내에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전국시대를 마감시킨다.

 

그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며 초기에는 조선군을 격파하며, 빠르게 한성과 평양을 점령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1598년 음력 8월 18일 '후시미'성에서 사망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에서 가장 낮은 신분으로 시작해 천하인으로 등극했다. 이로 인해 현대의 일본인들은 그를 밑바닥부터 올라와서 최고의 자리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인 금태합(今太閤)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명성과 달리 그의 장례식은 제대로 치러지지 못했으며, 심지어 그의 무덤은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폭파되었다. 그 이유가 뭘까?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덤은 일본인 손에 폭파되었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향년 62세로 생을 마감했다. 사인은 정확하지 않으며, 위암, 독살 등 여러 설이 있다. 그는 '아미다 산'에 매장되었고, 묘는 화려하게 조성되었다. 하지만 그의 장례는 치러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조선에 출병되어 있는 왜군들의 사기를 위해 그의 죽음을 숨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무덤은 폭파되어 소멸되고 만다.

 

*세키가하라 전투 - 1600년 일본에서 전국의 다이묘들이 두 세력으로 나뉘어 벌인 전투

 

 

일본인들의 손에 의해 무덤이 폭파되었는데, 이는 조선과 외교관계 회복을 위한 일이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의 무덤을 폭파함으로써 조선에 임진왜란이 히데요시의 강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음을 보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사실 임진왜란은 여러 다이묘들도 반대하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출전을 강행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 무력으로 제압하지 않은 다이묘가 많았다.

 

그중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온갖 변명을 하며 전쟁에 불참했고, 그의 군대는 온전히 보존되었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

 

결국 1615년,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가문을 습겼했고, 그로 인해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어머니인 '요도도노'는 오사카 성에서 자결하였다. 이렇게 도요토미 가문은 2대로 끝이 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임진왜란은 결국 과유불급이었던 것이다. 그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결국 자신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가문이 멸문하게 되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