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그는 4번이나 가출했다?

 

현대그룹 前 회장 정주영은 대한민국의 기업인이다. 그의 출발은 재벌이 아니라, 철도 공사판이었다. 그것도 소학교(現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였다.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으며 현대그룹을 창업한 정주영 회장은 흙수저 출신이다. 그는 "이봐, 해봤어?"라는 명대사를 남겼고, 웬만한 기성세대들의 꼰대 짓을 뭉개버리는 위대한 분이다.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먹고 살 때는.. 우리가 너희 정도 교육을 받았으면.. 내가 너희 정도면 벌써 성공했다" 등

 

과연 그들의 그 말이 사실일까? 정주영 회장을 본다면 거짓말이며, 핑계에 불과하다.

 

 

 

정주영 前회장

 

정주영 회장은 1915년 강원도 통천군 담전면 아산리 (現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구국 강원도 통천군 로상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봉식과 어머니 한성실 사이에서 6남 2녀 중 장남이었다.

 

그의 가정은 매우 가난했으며, 농사를 도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가난 때문에 1930년 송전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주영 회장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기죽지 않았고, 핑계 대지 않았다. 오히려 가족들과 잘 살아보기 위해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했다. 그는 총 4번이나 가출했다고 한다.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그는 4번이나 가출했다

 

정주영 막노동

 

정주영 회장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10대 시절에 여러 차례 가출을 반복했다. 실패도 했으나 결국 가출에 성공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 허리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죽도록 일해도 배불리 밥 한번 못 먹는 농부로, 아버지처럼 고생만 하다가 늙어 죽고 싶진 않았다"라고 했다.

 

첫 번째 가출은 원산 부근 철도공사현장에서 흙을 날랐는데, 아버지에게 붙잡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가출은 금화에 가서 일했다.

 

세 번째 가출은 아버지가 소를 팔고 받은 돈 70원을 들고 도망가서 경성실천부기학원에서 공부를 했는데, 또 잡혀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그의 의지는 정말 대단했다.

 

 

 

(좌) 정주영 회장과 복흥상회 주인 / 쌀 배달 자전거

 

그리고 마지막으로 1933년 봄, 정주영 회장의 나이가 19살에 네 번째 가출을 감행한다. 서울로 함께 온 친구에게 여비 50전을 빌려 무작정 인천으로 가서 하역작업부터 이삿짐 나르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 일을 했지만, 겨우 먹고 살 정도였다고 한다.

 

정주영 회장은 체념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부천 농가에서 품앗이 일꾼으로 한 달을 일하며 처음으로 돈을 조금 모았다고 한다. 그리고 또다시 막노동과 공장 심부름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틈만 나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1934년 '복흥상회' 쌀가게 배달원으로 취직하게 된다. 안정적인 일자리였고, 점심과 저녁밥을 주고 월급이 쌀 한 가마니였다고 한다. 그제야 정주영 회장은 '고향 떠나기를 잘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꼭두새벽부터 나가 가게 앞을 깨끗이 쓸고, 물까지 뿌리며 성실하게 일했다.

 

1938년 1월 정주영 회장은 24살에 가게를 넘겨받아 '경일상회'로 간판을 걸고 첫 사업을 시작했다. 주인은 여자에 빠져 재산을 탕진한 자신의 아들에게 물려주느니 차라리 정주영 회장에게 가게를 넘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1939년 일제가 전시군량 확보를 위해 쌀 배급제를 시행하면서 정주영 회장의 경일상회도 문을 닫게 된다. 그는 짧은 시간 안에 돈을 많이 벌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아버지에게 논 2000평을 사드렸다고 한다.

 

 

 

대한민국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

 

이렇게 출발한 정주영 회장은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력이 지대했다. 산업화도 주도했으며 남북 관계 개선에도 이바지한 대한민국의 위대한 인물이다.

 

우리들은 정주영 회장의 의지를 본받아 열심히 살아야 된다.

 

기성세대들의 "너는 안된다", "그게 될 거 같냐?", "내 말 듣고, 그냥 취업해라" 등의 말은 무시해라.

 

정주영 前 회장 "불가능하다고? 해보기는 했어?", "고정관념이 멍청이를 만드는 거야"

 

정주영 회장님이었다면 우리에게 도전하라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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