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은 독립혁명군의 총사령관으로서 독립 전쟁에서 미국을 승리로 이끌었고, 헌법제정회의에서 새로운 연방헌법을 재정하고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데 기여했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은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1789년 4월 30일 뉴욕, 미국 임시정부의 청사 페더럴 홀에서는 세계 역사상 최초로 혈연에 따른 세습이 아닌 임기가 정해져 있는 국가 원수가 탄생하는 중대한 의식이 거행되었다.

 

미국 초대 대통령 당선자인 '조지 워싱턴'은 오른손을 성경 위에 올린다. 뉴욕 재판소장 '로버트 리빙스턴'이 물었다. "당신은 미국의 대통령직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미국의 헌법과 국민의 권리를 수호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엄숙히 맹세합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장일치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장일치

 

독립전쟁에서 이겼고, 그들은 국가 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화제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왕이 없이 국민들이 합의해서 나라를 이끌어 간다는 게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13개 주 대표 55명은 뉴욕에 모여 제헌회의를 열었고, 회의에서 대통령 임기를 정하는데 표결을 무려 60번이나 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끝없이 논쟁만 계속되었고, 결국 대의원들은 조지 워싱턴을 불러 의장으로 추대했다.

 

어떤 사람들이 조지 워싱턴에게 미국의 왕으로 등극하라고 말했다. 그때 워싱턴은 "우리가 영국 왕에 항거해 싸웠는데, 다시 이 땅에 왕을 만들어야 되겠냐"라고 크게 화를 냈다.

 

대통령 지명권을 가진 선거인단 투표에서 13개 주 중, 연방제 반대의견으로 선거인단을 지명하지 못했던 뉴욕주를 제외하고, 12개 주로부터 선출된 69명의 선거인단은 각각 2표씩 행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조지 워싱턴에게 1표씩 투표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장일치로 선출'되었다.

 

다른 1표는 다른 11명의 후보들에게 갈렸는데, 당시 헌법에 따라 두 번째로 많이 득표한 '존 애덤스'가 미국의 초대 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조지 워싱턴 : 무소속, 일반득표 - 38,818, 선거인단 득표 - 69

 

존 애덤스 : 연방주의, 일반득표 - 0, 선거인단 득표 - 36

 

조지 워싱턴의 미합중국 대통령의 취임은 세계사에서 최초로 국민이 직접 뽑은 국가 원수였다. 이때부터 대통령 중심제로 대표되는 현대 정치의 진정한 출발이 시작되었다.

 

 

 

조지 워싱턴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은 마운트 버논에서 말을 타고 뉴욕까지 가서 취임식에 참석했다. 당시 워싱턴 DC가 연방 정부의 수도로 정해져 있었는데, 도시가 건설 중이라서 뉴욕에서 취임을 했다.

 

조지 워싱턴은 미국 대통령들 중 유일하게 백악관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취임한 후, 국가를 왕이나 독재자가 통치할 수 없도록 많은 공을 들였다. 강력한 중앙정부를 만들면서 국무부, 연방 대법원 등을 만들어 3권 분립을 단행했다.

 

그의 의지는 결국 미국을 강국으로 만들었다. 그가 취임할 때는 허술한 나라였으나 퇴임할 때는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국가가 되어 있었다. 또한 그는 끝맺음이 확실했던 대통령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조지 워싱턴이 연임하기를 원했고, 헌법에도 대통령의 임기를 제한하는 조항은 없었다. 하지만 조지 워싱턴은 "내가 더 연임을 하게 되면 후대에도 그렇게 하려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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