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조직 '하나회'란?

 

1951년, 육군사관학교 첫 입학생 중, 영남 출신 생도였던 전두환, 노태우, 최성택, 김복동, 백운택 다섯 명이 주축이 돼 조직한 '오성회(五星會)'가 시초라고 한다.

 

창립멤버가 다섯 명이라 오성회라는 이야기도 있고, 최초의 5성 장군이었던 '맥아더 사령관'을 본받기 위해 오성회라는 이야기도 있다.

 

다섯 명은 각자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별의 이름을 하나씩 선택했다고 한다.

 

■ 전두환 = 용성(勇星) 勇(날랠 용)

■ 노태우 = 관성(冠星) 冠(갓 관)

■ 김복동 = 여성(黎星) 黎(검을 려, 검을 여)

■ 최성택 = 혜성(譿星) 譿(슬기로울 혜)

■ 백운택 = 웅성(雄星) 雄(수컷 웅)

 

 

전두환의 주도로 육군사관학도들은 5·16 군사 정변에 대한 지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때문에 박정희 소장이 그들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그들은 회원을 지속적으로 받아 여러 번 개편 과정을 거쳤고, 육사 8기를 몰아내기 위해 '7·6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좌) 전두환 / (우) 윤필용

 

이후, 칠성회(七星會)로 확대되었다가 하나회로 발전했다.

 

하나회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서약 절차를 거쳤다.

 

■ 하나회의 선후배와 동료들에 의해 합의된 명령을 복종한다.

■ 하나회원 상호 간에 경쟁하지 않는다.

■ 서약을 위반할 시 '인격 말살'을 감수한다.

 

 

하나회 출신들은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했다.

 

승진이나 인사이동 때, 하나회 선배가 후배들을 추천하고, 밀어주며 후배들은 선배들의 지시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형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하나회가 독점했다.

 

군 사조직 하나회의 초기 리더는 윤필용과 전두환 등이었다고 한다.

 

 

 

윤필용 사건

 

윤필용이 군부의 일인자가 되면서 후계자 발언을 한다. 그의 실언으로 인해 군 사조직 하나회의 실체가 알려진다. 당시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조사한 하나회는 이렇다.

 

■ 정규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기본 정원제로 가입, 10명 내외.

■ 회원 다수는 영남 출신이 점함.

■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 시 조직에 신명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할 것.

■ 고위층으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징수.

■ 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진급 및 보직 상의 특혜.

 

 

윤필용 사건으로 인해 장성, 영관급 장교, 위관급 장교 등 여러 명이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구속되거나 군복을 벗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나회는 전두환을 중심으로 다시 뭉치게 된다.

 

전두환은 윤필용 사건에 휘말리지 않고, 기적적으로 보안사령관에 복귀한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의 각별한 신뢰를 바탕으로 조직을 더 굳건히 하고, 확장했다.

 

 


 

12·12 군사 반란 / 5·17 쿠데타

 

5·17 쿠데타

 

10·26 사건 이후, 하나회는 전두환의 뜻에 따라 12·12 사태를 주도했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 군의 핵심 요직에 올랐다. 12·12 사태를 전두환을 중심으로 신군부는 집권 시나리오를 기획했고, 방해 세력들을 제거했다. 그리고 5·17 쿠데타를 일으킨다.

 

정당 및 정치활동을 금지시키고, 국회 폐쇄, 국보위를 설치했다. 영장 없이 학생과 정치인 그리고 재야인사 2699명을 구금했다.

 

5·17 쿠데타에 항거해 일어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했다.

 

전두환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신군부 인사들을 육군참모총장, 합동참모의장, 보안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도경비사령관과 같은 요직을 꿰찼다. 그들은 예편하고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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