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작전은 북한 민간인 10만여 명을 구출한 위대한 작전이었다.

 

6·25전쟁에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며 흥남철수작전을 수행한 기적의 배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이다.

 

이 작전은 미리 계획한 것도 아니고, 병사를 구한 것도 아니고, 한국인의 요청과 미국인의 결정으로 갑작스럽게 수행한 작전이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

 

 


 

흥남철수 지시

 

 

6·25 전쟁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을 하였지만 중공군이 개입하는 바람에 청천강 전투와 장진호 전투 등을 겪으며 전세가 불리해졌다.

 

유엔 사령부는 1950년 12월 8일 흥남철수 지시를 내렸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국 제1해병사단은 10배에 달하는 12만의 중공군 남하를 지연시켰고, 그 포위망을 뚫고 흥남에 도착했다.

 

1950년 12월 15일 ~ 12월 24일까지 철수가 이뤄졌다.

 

 


 

김백일, 현봉학의 설득

 

 

작전을 수행하는데, 문제는 피난민들이었다.

 

피난민들은 탈출을 위해 흥남부두로 약 30만 명이 모였다.

 

이들은 공산치하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고, 월남을 희망했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동안 공산주의를 거부했고, 유엔군을 도왔기 때문에 내버려 둘 수도 없었고, 내버려 뒀다간 공산치하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흥남철수작전은 병력만 철수하는 계획이었다.

 

그때 '김백일 국군 제1군 단장'과 '현봉학 미 제10군단 민사부 고문관'이 피난민도 데려갈 것을 요청했다. '에드워드 알몬드 미 제10군단장을 적극적으로 설득한다.

 

김백일 국군 제1군 단장 曰 - "만약 피난민들을 배에 태워주지 않는다면 우리 국군은 피난민과 함께 육로로 38도선을 돌파해 가겠소"

 

그때 '레너드 라우 메러디스 빅토리호 선장'이 결단을 내린다.

 

"배에 있는 무기를 모두 버리고, 빠짐없이 (피난민들을)태워라"

 

군수물자를 모두 버리고, 60명 정원의 230배가 넘는 피난민 1만 4000명을 배에 태웠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기적의 배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12월 23일 출항, 기적의 배라 불렸다.

 

레너드 라우 선장 曰 - "어떻게 그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을까? 황량한 고난의 항해 속, 한국의 검은 바다 위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키를 잡고 있었다. 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보았다"

 

그 많은 피난민이 군인들과 함께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3일간 항해를 마친 빅토리호는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 그래서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 불린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한때 가장 많은 난민을 태우고 항해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흥남철수작전은

 

 

흥남철수작전은 대한민국 제1군단과 미국 제10군단의 장병 100,000명, 차량 17,000대 군수품 350,000t, 피난민 약 100,000만 명을 동해상으로 철수시키는데 성공했다.

 

도착한 다음날, 흥남으로 중공군이 들이닥쳤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배에 오르지 못한 피난민들은 죽음을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흥남철수작전에서 결정권을 가진 그들이 어떻게 행동을 했는지 우리는 역사로 봤다.

 

결정권을 가진 그들이 만약 자신들의 목숨을 위해 외면하고, 잘못된 결정을 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이다.

 

항상 이런 분들을 기억하고, 본받아야 한다.

 

 


 

김백일 대한민국 제1군단장

 

현봉학 미국 제10군단 민사부 고문관

 

레너드 라우 메러디스빅토리호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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