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구를 막는 데는 화약만한 것이 없으나, 국내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 태조실록 1395년 4월 19일-
최무선은 고려시대 무신이자 과학자로 한국 역사상 최초로 화약을 발명하여 우리나라 무기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인물이다.
당시 고려는 심심하면 왜구들이 들어와 약탈을 일삼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최무선은 중국으로부터 수입해서 불꽃놀이를 하는 데 사용하던 화약의 중요성을 미리 간파하고 화약을 국산화시켜서 무기로 만들어 왜구를 소탕하는데 사용하자고 설득했다.
사람들의 멸시와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최무선이 발명해낸 화약과 신무기는 고려시대에도 왜적을 물리치는데 큰 도움이 되었고, 조선시대에 일어난 임진왜란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당시 화약에 대한 생각
당시 고려에는 화약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화약은 중국에서 수입하면 그만이고, 폭죽놀이 등의 놀이에나 사용되는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화약이 무기가 될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무선은 화약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무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에 항상 중국 강남에서 온 상인이 있으면 찾아가 화약 만드는 법을 물어보았고, 직접 원나라에 가서 화포 만드는 법도 배웠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사람들은 화약을 만드는 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화약을 만든 최무선
최무선은 원나라 출신의 염초장 이원에게서 화약 제조 비법을 배웠다.
화약 제조 기술을 습득한 뒤, 최무선은 도당에 건의하여 화약을 시험하려 하였다. 그러나 관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세상을 속이려 하는 인물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최무선은 포기하지 않고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화약 제조를 건의했고, 그의 열의에 감동한 왕은 화약국을 설치하도록 하였다.
우왕 3년 1377년 10월, 최무선은 화약 및 화기를 제조하는 화통도감을 설치하였고,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화약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최무선은 다양한 화포를 만들었는데, 그 종류에는 대장군포·이장군포·삼장군포·육화석포·화포·신포·화통·화전·철령전·피령전·질려포·철탄자·천산오룡전·유화·주화·촉천화가 있다.
왜구 격퇴의 공로자는 이성계가 아닌 최무선과 화약
고려사, 조선 기록에 의하면 왜구 격퇴의 공로는 무조건 이성계였다.
때문에 태조와 관련된 드라마에서 항상 왜구를 무찌른 고려의 희망으로 연출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기록들을 살펴보면 왜구 격퇴의 공로는 이성계가 아닌 최무선의 화약일지도 모른다.
경신년(우왕 6년) 1380년, 왜선 3백여 척이 전라도 진포에 침입했을 때, 화약을 시험해하기 위해 최무선과 심덕부, 나세와 함께 화포를 써서 모조리 수장시켰다. 배를 잃은 왜구들은 육지에 올라와서 전라도와 경상도까지 노략질을 하고 다시 운봉에 모였다. 이때, 병마도원수 이성계가 왜구를 섬멸했다. <태조실록>
모두가 비난하고 아니라고 할 때, 최무선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화약을 만들었다. 때문에 고려 때 그 많은 왜구의 침략을 막았고, 만약 화약이 없었더라면 고려는 더 일찍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화약은 훗날 임진왜란에서도 다시 한번 크게 쓰였고, 이순신이라는 성웅이 탄생한다.
여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인물들도 중요하지만 일찍이 그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화약과 무기를 개발한 최무선도 기억해야 한다. 만약 최무선을 이어 화약 등의 개발을 계속 이어갔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도 바뀔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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