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천량 해전, 원균(元均)은 선상에서 술까지 마셨다?

 

이순신 장군의 연전연승에도 조선의 임금 선조는 이순신 장군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왜군이 언제 다시 공격할지 모를 위기 속에서도 관료들은 당파싸움에 미쳐있었다.

 

한반도 끝까지 도망갔다가 돌아왔음에도 깨우친 것은 없고, 그저 누군가가 왜적을 짜잔~ 하고 물리쳐주길 원했다.

 

그렇게 자기들끼리 한창 싸우고 있을 때, 1593년부터 명나라와 왜(倭)국 간의 강화교섭은 5년간 계속되었지만 결국 결렬되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전라도를 비롯한 '하삼도'를 점령하라는 명령서를 보냈다. 그 당시 조선은 적들의 침략에 도로가 활용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도로를 건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강이나 바다를 통해 보급물자를 전달해야 했다.

 

그 바다에는 '이순신 장군'이 계셨다. 번번이 왜적을 막았던 이순신 장군은 그들에게 눈엣가시였고,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오만가지 방법을 다 사용했다.

 

한편, 조선 조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일본 본토로 신속히 보고되었다고 한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징비록' / 고니시 유키나가

 

고니시 유키나가는 이순신 장군이 조선 임금인 선조에게 미운털이 박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상대로 사기를 쳐서 죽을 위기에 처했지만, 공을 세우는 조건으로 잠시 목숨이 연장된 상황이었다.

 

급했던 그는 경상도우병사 김경서(金景瑞, 김응서)의 진에 드나들던 왜인 가나메 도키스라(要時羅, 요시라)를 통해 거짓 정보를 흘렸다.

 

"강화교섭은 가토 기요마사 때문에 결렬이 되었고, 그를 제거하면 전쟁이 끝이 난다." 그가 넘어오는 날짜도 알려주며 "통제사 이순신'이 길목을 지켰다가 일제히 공격하면 가토 기요마사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당연히 조정은 이순신 장군에게 명령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왜의 간계가 있을 것을 이유로 명을 따르지 않았다. 실록의 날짜별 기록을 보면 명령이 전달되기도 전에 가토 기요마사는 부산에 상륙을 한 것으로 보인다.

 

선조와 조정은 이순신 장군을 파면하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한다.

 

이순신 장군은 원균에게 병기, 화약류, 병력, 군량미 등 세세히 인계하고 함거에 올랐다.

 

백성들은 함거를 가로막고 울부짖었다.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이제 우리는 다 죽게 되는 겁니까!"

 

 


 

칠천량 해전

 

칠천량 해전

 

도원수 권율은 원균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원균은 무모하게 출전하여 보성군수 안홍국(安弘國) 등이 전사했다. 그리고 본인은 한산도 본영(本營)에 앉아 경상우수사 배설에게 웅천(熊川)을 급습하라고 명령했다.

 

배설은 전선 수십 척을 잃고 패했다. 권율은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원균을 태형(笞刑)으로 다스리고, 다시 출전하라고 명령했다.

 

1597년 8월 26일(음력 7월 14일) 원균은 왜적의 본진인 부산을 급습하려고, 삼도 수군 160여 척(거북선 포함)을 이끌고 출전했다. 왜적의 교란작전에 말려 부산 인근의 바람과 파도를 고려하지 않고 적을 추격하다가 12척의 판옥선을 표류하게 해 잃어버리는 무능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적의 반격을 받아 또 많은 전선을 잃게 된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조선 수군은 가덕도에서 물을 확보하기 위해 내렸는데, 복병한 적의 기습을 받아 400여 명이 전사한다. 원균은 그들을 버리고 도주한다.

 

거제도 서쪽의 작은 섬, 칠천도 남쪽에 정박했던 조선 수군은 왜적의 야습을 당하고, 단 한 번을 제대로 싸워보지 못하고 계속 도망가다 힘을 다 빼버린다. 조선 수군이 무방비 휴식 상태에 있을 때 왜적은 기습할 계획을 세웠다.

 

<해소실기 海蘇實紀> 조선 중기의 무신 김완의 시문집에 의하면 원균은 제대로 된 지휘를 하지 않았고, 선상에서 폭음을 하였다고 한다.

 

도도 다카토라, 와키자카 야스하루, 가토 요시아키 등 왜적의 수군 장수들은 7월 14일 거제도 북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15일 밤, 일제히 수륙양면 기습작전을 펼쳤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 이억기 전사

 

무방비였던 조선수군들은 당황했고, 결국 대부분의 전선들은 불탔으며 전소되었다. 이때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와 충청수사 최호(崔湖) 등 수군 장수들이 전사했다. 원균은 순천부사 우치적과 함께 탈출하여 상륙했다.

 

원균의 동생 '원전'은 형의 휘하에서 종사관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형은 튀었지만 동생은 끝까지 배 안에서 싸우다가 전사했다. 

 

 

 

이미지 출처 -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 원균 전사

 

원균은 도망치다가 소나무 아래에 숨어있던 왜적의 습격을 받고, 전사하였다.

 

경상우수사 배설은 전선 12척을 이끌고 도망쳤다.

 

<해소실기 海蘇實紀>에 의하면 칠천량 해전 초기에 조선 수군을 공격한 왜적의 병력은 단 두 척이라고 기록되어있다. 포로가 되었던 정기수 역시 소수 병력이 기습했는데, 조선 수군은 적이 많은 줄 알고 도주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갔던 강항 역시 왜적들의 말을 빌어 칠천량에 정박한 조선 수군 함대에 적선 한 척이 접근해 조총 한 발을 쏘자 조선 수군 함대가 놀라 도망치다가 스스로 무너졌다고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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